▷워싱턴-모스크바 핫라인은 그 후로도 중대한 위기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미소 정상간의 긴급 협의수단으로 사용됐다. 이른바 ‘차가운(cold)’ 전쟁을 녹이는 ‘뜨거운(hot)’ 통화였던 셈이다. 지난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범세계적인 반전 열기에도 불구하고 대(對)이라크 공격을 명령했다. 앞으로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주요 정상들간의 핫라인이 얼마나 뜨겁게 달궈질지 궁금하다. 북한도 지금 전쟁 추이를 주시하면서 상황판단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서울-평양간 핫라인이 있다면 남북 정상간에 통화가 있었을 법도 한데….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 대국민 연설에서 지난 12년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이라크를 무장해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평화적 외교적 노력이 모두 무위로 돌아갔기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권좌에 있는 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제거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북한을 ‘악의 축’ 일원으로, 또 ‘폭압정권’으로 보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 인식 역시 대이라크 인식과 비슷한 것 같아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리측은 90년대 초부터 남북간 군사신뢰구축 및 위기관리를 위해 쌍방 군 수뇌부 사이에 ‘군사직통선’을 설치하자고 제의해 왔다. 그러나 북측은 군사문제는 남북간 문제가 아니라 북-미 사이에 협의할 문제라고 강변하면서 군사적 신뢰구축에 관한 남북간 협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오늘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남북 정상 또는 군 수뇌부간에 핫라인이 설치돼 있다면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 혹은 북-미간의 ‘중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군사문제에 관한 한 남측과 마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버릴 때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박용옥 객원논설위원·전 국방부 차관 yongok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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