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용옥/핵위기와 핫라인

  • 입력 2003년 3월 23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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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라인(hot line)이란 ‘긴급연락용 직통 통신선’을 말한다. 미국과 소련은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를 계기로 63년 6월 20일 제네바에서 ‘직통 통신선 설치에 관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쿠바 미사일위기란 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12일간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 시도와 이에 맞선 미국의 쿠바 해상봉쇄로 핵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갔던 세계적 위기상황을 말한다. 67년 6월 중동전쟁 기간 중 소련은 핫라인을 통해 미국에 평화를 위한 협력을 요청했고, 미국 또한 이를 활용해 당시 지중해 미 해군함대의 움직임에 대한 소련측의 오해를 방지할 수 있었다.

▷워싱턴-모스크바 핫라인은 그 후로도 중대한 위기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미소 정상간의 긴급 협의수단으로 사용됐다. 이른바 ‘차가운(cold)’ 전쟁을 녹이는 ‘뜨거운(hot)’ 통화였던 셈이다. 지난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범세계적인 반전 열기에도 불구하고 대(對)이라크 공격을 명령했다. 앞으로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주요 정상들간의 핫라인이 얼마나 뜨겁게 달궈질지 궁금하다. 북한도 지금 전쟁 추이를 주시하면서 상황판단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서울-평양간 핫라인이 있다면 남북 정상간에 통화가 있었을 법도 한데….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 대국민 연설에서 지난 12년간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이라크를 무장해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평화적 외교적 노력이 모두 무위로 돌아갔기 때문에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권좌에 있는 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제거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북한을 ‘악의 축’ 일원으로, 또 ‘폭압정권’으로 보는 부시 대통령의 대북 인식 역시 대이라크 인식과 비슷한 것 같아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리측은 90년대 초부터 남북간 군사신뢰구축 및 위기관리를 위해 쌍방 군 수뇌부 사이에 ‘군사직통선’을 설치하자고 제의해 왔다. 그러나 북측은 군사문제는 남북간 문제가 아니라 북-미 사이에 협의할 문제라고 강변하면서 군사적 신뢰구축에 관한 남북간 협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오늘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남북 정상 또는 군 수뇌부간에 핫라인이 설치돼 있다면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 혹은 북-미간의 ‘중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 군사문제에 관한 한 남측과 마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버릴 때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박용옥 객원논설위원·전 국방부 차관 yongok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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