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희문/자유를 말하던 이창동 감독이…

  • 입력 2003년 3월 18일 19시 43분


코멘트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 ‘오아시스’가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수상했을 때 국내 언론이나 평론가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영화가 세계 무대에서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는 자부심, 뒤늦게 영화감독의 길에 들어선 이창동의 치열한 작가성에 대한 놀라움의 찬사였다.

▼권위적 위협적 모습으로 ▼

그러나 주변의 들뜬 분위기와는 달리 정작 본인은 의외로 덤덤한 모습이었다. 수상이 그의 영화감독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앞으로 영화 작업하면서 용기를 얻고 자기 확신이 드는 방향으로 작용했으면 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 구속되거나 자기 기만에 빠지는 계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상 주고 인정한다고 해서 나 자신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고집스럽게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실행하고,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의연함이 묻어나는 표현이었다.

개인적으로 만나거나 영화감독으로서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그의 모습은 소박하고 소탈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일관되게 이끌어가려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캐릭터 그대로다. 고집스러우면서 순수한 예술가의 모습을 선의적으로 떠올린다면 누구보다도 거기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문화관광부 장관이 된 후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며 출근한다거나 넥타이를 매지 않은 평상복 차림으로 업무를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성격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복장의 자유가 마음의 자유를 이끌어간다’며 권위주의를 배격하는 파격적인 행동이, 남에게 보이기 위한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생각과 행동이 행정에도 반영될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모습의 문화부 장관 탄생을 맞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질 만한 대목이었다.

그런 그가 장관 취임 이후 처음 발표한 ‘문화관광부 홍보업무 운영방안’은 자율과 개방, 문화적 사고를 강조하던 평소 그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기자실 폐지’와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제한’으로 요약되는 취재방식의 변경은 너무도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며 위협적이기까지 하다. 기자의 사무실 방문취재는 금지하며, 취재가 필요한 경우에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담당 직원과 만나고, 기사에서 실명을 밝혀달라고도 주문하고 있다. 특정 언론이 독자적으로 취재한 사항에 대해 담당 공무원에게 확인을 요청하더라도 ‘공식 발표 때까지는 알려주면 안 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정례 브리핑에서 제공되는 내용이 기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전부나 다름없다. 원천적으로 자유로운 취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방이 아니라 폐쇄이며 차단이다. 청와대가 기자실 운영제도를 바꾸고 기자들의 개별 취재 범위를 극도로 제한한 데 이어 나온 조치라는 점에서 미리 정교하게 계획된 언론의 구조개편 프로그램의 일부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실천해왔고, 그것을 문화행정의 세부 분야에까지 확산해 나가겠다고 거듭 다짐하고 있는 이 장관의 모순적 태도다. 그는 언론정책에 있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분신’이란 말까지 하면서 새로운 제도 시행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비서관이 장관 승용차의 문을 열어주고, 직원들이 장관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관료 사회의 풍경을 가리켜 ‘조폭문화’를 연상케 한다고까지 지적했던 그가 정작 언론의 자유로운 접근과 취재를 제한하는 조치를 앞장서 시행하는 ‘조폭적 행동’을 보이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취재제한은 ‘조폭적 행동’▼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지켜야 할 상식과 합리적 가치’가 바로 원칙이며 그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다. 자유로운 복장에서 드러나는 자율과 개방, 합리적 가치와 상식이 어울리는 행정을 펴나갈 때 새로운 장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이창동 장관에게 거는 기대다.

조희문 상명대교수·영화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