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對北 쌀 지원도 좋지만

  • 입력 2003년 3월 14일 20시 08분


코멘트
어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농림부가 내놓은 대북(對北) 쌀지원 방안은 성급한 발표였다는 인상을 준다. 올해부터 3년간 매년 300만섬씩 모두 900만섬을 북한에 지원하겠다는 내용인데 수혜자인 북한측과 사전 협상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부 관계부처간 조율을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발표였기 때문이다.

물론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쌀지원을 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국내적으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쌀재고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농림부 입장에서 아무리 긴요한 사업이라고 해도 대북 정책 주무부처인 통일부와 세부 사항을 협의한 후에 발표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였다.

더욱이 지금은 나라 안팎에 북핵 문제로 인한 긴장이 위험수위까지 치닫고 있는 시점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식량 지원을 북핵 문제와 연계시켜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농림부의 이번 발표가 앞으로 대북 협상 과정에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의 효력을 스스로 약화시킨 측면은 없는지 따져볼 일이다.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무조건적인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 무엇보다 분배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는 북한 당국에 대해 군과 특권층에 식량을 빼돌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해야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지난달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한 미국이 국제 민간단체의 분배 감시활동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핵 파문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북한 당국이 핵도발을 계속함으로써 주민들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쌀을 지원한다면 북한 정권의 핵개발 의욕은 높아질 수도 있다. 정부는 인도적 식량지원 이전에 북한 지도부를 대상으로 핵위기 해소를 위한 설득 노력을 추진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