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정력과 비아그라

  • 입력 2003년 2월 9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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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로는 온갖 전화가 걸려온다.

10년 이상 편집국에 앉아 온갖 전화를 받다 보니 첫 목소리만 들어도 대략 어떤 사람인지 알 경지에 이르렀다.

특유한 고음에 말 속도가 빠른 사람은 대부분 “정보기관이 뇌에 도청기를 심었다” “기억을 도둑맞았다”는 등 황당한 이야기를 펼쳐 놓기 마련이다. 민원을 할지, 제보를 할지, 하소연을 할지 대부분은 첫 목소리에 판명이 난다.

그런데 50대 남성이 점잖고 예의바르게 목소리를 쫘∼악 깔고 “참 훌륭한 기사를 썼더군요”하면서 운을 떼면 대부분 성(性)과 관련한 문의 전화다. 최근 영국에서 비아그라를 능가할 만한 약이 시판된다는 기사를 내보내고 나서도 ‘점잖은 전화’를 참 많이 받았다.

그런데 이 기사와 관련해서 그리 점잖지 않은 목소리의 전화도 몇 통 왔다.

모두 이 약을 시판하는 일라이 릴리사의 미국 본사와 영국 지사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영국에 가서 ‘물건’을 대량으로 사와 한국에서 팔려는 장사치였다.

필자는 비아그라가 정식 판매되기 1년 전 비아그라 불법 판매 현장을 취재한 뒤 기사를 써 검찰 경찰 세관 식품의약품안전청 등이 한꺼번에 수사에 들어가게끔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발기부전 치료제 불법 판매상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수요(需要)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 기능에 문제가 있으면 병원에서 비아그라나 유프리마 등 치료제를 처방받아 약국에서 사면 되는데 웬일인지 한국인은 암시장(暗市場)을 선호한다.

지난해 세관에 적발된 비아그라만 해도 22억원어치이고, 화이자사의 한해 정식 판매량 180억원보다 밀수량이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밀수품은 대부분 가짜다.

한국인은 성 문제로 병원에 가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정력을 위해 암시장에서 이런 것을 구입하는 것을 더 부끄럽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오로지 정력 강화를 위해 온갖 동물을 먹는 것도 이해하기 곤란하다. 그것보다는 적절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사, 금연, 절주가 정력 강화에는 훨씬 효과적이다. 그래도 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병원을 이용해야 한다. 요즘에는 치료를 위한 선택의 폭이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 올해에는 국내에 일라이 릴리사의 시알리스 외에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바이엘이 공동 개발 한 레비트라도 선을 보인다. 동아제약이 개발한 DA-8159란 약도 2단계 임상시험을 마쳤는데 효과가 비아그라에 버금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 제약회사도 발기부전 치료제의 동물실험을 끝내고 곧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자신의 성기능에 문제가 있다면 짐짓 목소리를 깔면서 언론사에 전화를 걸기보다는 집 부근의 의원을 찾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성주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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