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교수의 뇌의 신비]멜라토닌으로 시차증후군 치료

  • 입력 2003년 1월 26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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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파치노가 노련한 탐정으로 나오는 영화 ‘인섬니아’(영어로 ‘불면증’이라는 뜻)에서 주인공은 미국 알래스카로 출장을 간 뒤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해가 지지 않는 그 곳의 백야 현상이 주된 원인이었다. 무려 일주일간 밤을 하얗게 샌 그는 범인의 총에 맞고서야 “이제야 비로소 잠이 오는군”하며 영원한 잠에 빠져든다.

우리 뇌에는 하루의 시간 변화에 맞추어 신체 행위를 조절하는 소위 ‘인체 시계’가 있다. 바로 시상하부의 상교차핵이라는 부위이다.

이 시계는 바깥의 밝음과 어두움의 주기적인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갑자기 해가 지지 않는 북극권을 방문했다면 자기 몸의 시계와 바깥의 밝고 어두움 사이에 부조화가 생겨 피로, 두통, 수면장애 등에 시달리게 된다. 이를 ‘시차 증후군’이라고 한다.

뇌의 송과선에서 밤에 분비되어 수면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멜라토닌은 이런 시차 증후군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한때 멜라토닌은 인간의 수명을 늘린다, 암을 예방한다, 면역체계를 증강시킨다는 식으로 알려져 미국에서는 퍽 많이 팔렸다. 이른바 미국판 ‘불로 장생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별로 근거가 없다. 멜라토닌이 수명을 늘린다는 주장은 쥐를 사용한 데이터에 근거하지만 그 쥐들은 정상적인 쥐가 아닌 선천적으로 멜라토닌이 결핍된 쥐였다. 즉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니까 잘 살았을 뿐이다.

멜라토닌이 암 환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 물질이 세포에 해로운 ‘자유 산소기’(유해 산소)를 제거한다는 보고에 근거한다. 하지만 멜라토닌의 자유 산소기 제거 효과는 이보다 값이 싼 비타민C보다 못하다. 더구나 멜라토닌의 장기 복용에 따른 부작용을 우리는 아직 확실히 알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보다 더 멜라토닌에 감사해야 할 동물은 보호색을 만드는 동물일 것이다. 개구리나 두꺼비의 피부 색깔을 주변 색에 맞추어 변하게 하는 것은 멜라토닌이며, 산토끼 역시 멜라토닌 덕택에 겨울에는 흰토끼가 되고 여름에는 갈색토끼가 된다.

이런 보호색은 이들 동물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멜라토닌의 이런 성질을 이용한다면 피부가 너무 검어서 고민하는 사람의 걱정을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동물과는 달리 멜라토닌은 인간의 피부 색깔과는 관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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