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시춘/보듬고 나누는 母性사회로

  • 입력 2003년 1월 14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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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성장은 민간독재와 군사정권의 한 세대를 통과하는 동안 주로 시위 농성과 같은 ‘비(非)관습적 정치과정’과 때로는 분신, 지하조직 등의 극한투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한 분수령이 1987년 6월 민주항쟁이었으며, 이후 10년간 당시의 직선제 헌법을 쟁취한 주도세력은 기득권과의 재집권 연합으로 정부를 형성했다.

김영삼 김대중 두 민간 정부는 집권 초의 높은 지지도와 말기의 추락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민간 정부가 성취한 괄목할 만한 몇 가지 업적에도 불구하고, 가신과 측근정치의 발호 및 부패 문제에 관한 한 국민들의 평가는 냉혹해서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에 비해 민주주의 수행능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차별-특권 춤추는 패권사회▼

적어도 87년 6월 이전까지 우리 국민은 헌법 12조에서 36조에 이르는 자유권과 참정권 및 사회권을 강제로 반납 당하고 오로지 ‘부국 강병’으로 매진했다. 정치적 소수자에 대한 가혹하고 야만적인 학대, 사회적 약자들의 진공에 가까운 무권리 상태 등으로 문명사회 최고 수준의 대한민국 헌법 이념이 짓밟혔다. 이 과정에서 사회전반에 걸쳐 지역과 학벌 등 여러 형태의 패권을 추구하고 이를 독점하는 매우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 패권은 필연적으로 차별과 소외를 낳는다. ‘패권적 지역주의’는 ‘저항적 지역주의’와 ‘반사적 지역주의’를 부를 수밖에 없으며, 이는 21세기인 현재에도 우리 공동체의 건강을 좀먹는 고질적 바이러스로 건재하고 있다. 인류에게 파멸적 재앙을 불러일으킨 파시즘, 군국주의, 제국주의 등은 모두 ‘부국강병’과 남성중심의 패권을 추구한다.

괴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어느새 괴물을 닮아버린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정당 구조를 뚫고 솟아오른 새로운 변화의 진원지는 바로 참여와 나눔의 열린 공간이었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앞서 실패한 두 민간 정부의 길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국가 경영의 패러다임을 새로이 개척해야 한다.

국민의 ‘인권 지킴이’ 책무를 진 필자는 국정 과제 중 ‘차별과 특권’을 시정하는 국가차별시정위원회의 취지에 주목한다. 특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770만명이 비정규직이며 이들 중 70%가 여성이다. 동일 노동에 근무시간도 길지만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에 머무르고 있으며, 20%는 월 5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다. 성별, 장애, 학력, 외국인 차별에 우선하는 시급한 과제이다. 헌법규정 자체만으로 실효성이 보장되는 자유권과 달리 경제적 최저생활의 보장은 의회와 행정부의 정치적 정책적 판단의 대상이며 정부의 재정투자와 직결된다.

한국이 가입한 유엔의 사회권 규약은 이를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자국의 가용자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자유권과 참정권을 향한 투쟁 속에 묻혀버린 사회권 역시 ‘인간다운 생활을 할’ 불가침한 인간 존엄성의 영역이다. ‘가용한 자원’에 대한 국민적 동의는 부국강병만을 추구하는 패권 의식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싹트기 어렵다.

▼대화와 相生의 철학을▼

‘북핵(北核)’의 벼랑을 대화와 상생의 철학으로 무사히 넘을 수 있다면 우리는 천문학적 액수의 무기를 녹여 보습을 만들 수 있다. 배고픈 동족의 심장을 겨눈 총칼을 굶주리고 소외된 이들의 복지로 전환할 수 있다. 이 소망을 이루려면 패권추구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적 사회(He-society)로부터 생명을 보듬고 나눔을 추구하며 이를 제도화하는 따스한 모성적 사회(She-society)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차별에 상처받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열려 있는 국가기구는 이미 존재하고 있다. 행정력의 낭비를 줄이고 패권과 차별을 녹이는 보다 실효성 있는 제도를 구축할 새 정부에 기대를 건다.

많은 이들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지난해에 체험했다. 희망은 그토록 힘이 세다.

유시춘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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