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건축가 금융인등 전문직들 광고출연 적극나서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7시 12분


우리은행의 홍대희 투자금융팀 부장(왼쪽)과 건축가 서혜림씨가 자신이 등장한 TV 광고가 흐르는 모니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신석교기자
우리은행의 홍대희 투자금융팀 부장(왼쪽)과 건축가 서혜림씨가 자신이 등장한 TV 광고가 흐르는 모니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신석교기자
얼마 전 한 광고회사에서 식품회사의 TV 광고를 찍기 위해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접촉했다. “광고 모델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나이는 40대, 대부분 억대 연봉을 받고 있는 12명의 금융업계 베테랑들이 카메라 테스트를 받기 위해 이 광고회사를 찾아왔다. 이 가운데 1명이 선정됐고, 이렇게 만들어진 광고는 현재 전파를 타고 있다.

모델로 활약하는 전문 직업인이 늘고 있다. 한때 자신의 전문분야 밖으로 눈을 돌리면 “실력이 없어서”라거나 “다른 생각이 있어서”라는 ‘오해’를 받았던 전문가들이 이제는 ‘외도’할 분야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는 작업이 재미있기도 하거니와 스스로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본업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

최근 들어 부쩍 ‘음악가·건축가·변호사·금융인’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전문가가 TV 광고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광고모델로 활약 중인 건축가 서혜림씨(41·여)와 금융인 홍대희씨(47)를 만났다.

●“이제는 1인 주식회사 시대”

홍대희 우리은행 종합금융단 투자금융팀 부장은 CJ의 즉석밥인 ‘햇반’의 광고모델이다.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아내를 위해 즉석밥을 사온 홍 부장은 “아내가 부엌에 있는 시간을 줄여 주고 싶어요”라는 말과 함께 밥을 맛있게 먹는다.

“8월말쯤 서울 강남의 한 모델 에이전시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구인잡지에 실린 ‘억대 연봉 받는 금융계 샐러리맨들’이라는 기사와 사진을 봤다고 했다. 대뜸 카메라 테스트 받아 보겠느냐고 묻기에 재미있겠다 싶었고 은행과 개인 이름이 들어가니까 업무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다”는 게 홍 부장의 말이다.

모델료를 묻지도 않은 채 선뜻 제의를 수락하고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광고를 만들었던 제일기획은 “너무 세련되지 않으면서 편안한 인상이 좋다”고 평가했다. 홍 부장은 9월 어느 날 서울 강남의 스튜디오로 찾아가 햇반을 먹는 장면을 찍었다.

밥을 사서 들고 오는 장면, 식탁에서 밥을 최대한 맛있게 먹는 장면 등에서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지 않았다. NG를 수십 번 내면서 촬영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동시 녹음인데다 광고의 등장인물은 홍 부장 뿐이라 어색함을 없애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찍는 게 관건이었다.

자신의 광고를 TV에서 보고 ‘생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나왔다’며 만족해하는 홍 부장은 만일 새로운 CF 제의가 들어온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찍을 때 애를 먹기는 했지만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기 때문이다.

하루를 CF에 투자하다니. 그의 생활은 한가한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생활은 일분 일초를 다툴 만큼 빡빡하다.

홍 부장은 다른 은행에서는 4, 5개로 나뉘어 있는 투자업무를 통합한 종합금융단의 투자금융팀 팀장이다. 이 팀에서는 해외 유가증권, 자산유동화증권(ABS), 프로젝트 파이낸싱, 벤처투자, 기업인수합병(M&A) 등 은행의 투자와 관련한 업무를 총괄한다.이 때문에 그는 오전 8시쯤 출근해 국제 금융정보를 점검하고 국내 뉴스를 훑고, 60여곳의 해외거래선에서 보내온 현지 주요 채권시세와 금리 환율 전망 등을 스크린한다. 팀원들과 당일의 투자방향을 결정하면 국내에 진출해 있는 해외 금융기관의 아시아 총괄사장이나 국내 금융기관 및 기업의 재무담당 임원 등을 만난다. 한국외국어대를 나와 연세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딴 뒤 ㈜대우를 거쳐 은행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내년 중 우리은행의 정책에 따라 ‘은행장 보다 높은 연봉(3억∼4억원)을 받는 최초의 은행원’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이다.

“하루나 이틀 정도의 시간을 본업이 아닌 일에 투자하는 것은 내 인생 전체로 봐서는 큰 손해가 아니다. 특히 광고에 등장한 것이 고객과 만나는 데 아주 도움이 된다”는 게 홍 부장의 말이다.

광고가 입소문을 타면서 중요 고객이 먼저 “아, 그분이시군요”라며 아는 체를 해왔다. 심지어 해외 증권사에서 일하는 교포의 경우 국내 드라마 비디오를 빌려보다 그를 발견하고는 국제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 은행 내에서, 가족 사이에서 ‘스타’가 된 것은 물론이다. 경영진은 “돈 안들이고 은행을 알리게 돼 좋다”며 격려했다.

그는 한국금융연수원에서 8년째 전임강사를 맡고 있다. 금융기관에서 투자업무를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다 보면 영업 네트워크가 넓어진다. LG 등 그룹사에서 강의요청이 와도 적극적으로 나간다. 한 번에 기업인 50∼60명을 알 기회가 되기 때문. 곧 자신의 강의내용을 책으로 낼 생각도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제의가 들어와도 CF를 찍지 않았을 것이다. 외환위기 전에는 은행원의 직위가 안정돼 있었고, 스스로를 브랜드화 한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1인 주식회사 시대 아닌가. 나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대외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다.”

●심각한 것은 없다. 삶은 재미일 뿐.

올 4월 건축가 서혜림씨는 난생 처음 뉴질랜드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드물게 해외에서 광고를 찍는 행운을 누리게 됐기 때문. “신들이 내려다보며 스스로 즐기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 같은 땅” 뉴질랜드에서 서씨는 경비행기를 모는 장면을 1주일 동안 촬영했다.

서씨는 대우증권의 고소득층 대상 금융상품인 ‘플랜마스터’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현금을 적어도 5000만원이상 넣을 수 있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자산 관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당신은 인생에 투자하라’는 내용을 전달한다.

광고제의를 받을 무렵 그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설계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 1주일째 밤샘작업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와 광고에 나와달라며 잠시 후 찾아오겠다고 했다. 장난이려니 여기면서도 일단 와보라고 했고, 도착한 이들은 10여분간 광고 컨셉트를 설명한 뒤 디지털캠코더로 자신의 모습을 찍어갔다.

당시 광고대행사 오리콤은 또 다른 여성과 서씨를 놓고 적당한 모델을 저울질하고 있었는데 얌전하고 우아한 분위기보다는 적극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서씨를 낙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경비행기를 탄다고 하기에 재미있겠다 싶었다. 더욱이 내가 광고하는 상품의 이미지가 좋았으며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CF가 방송되면서 주변의 반응도 다양했다. 대체로는 “잘 나왔다”고 했지만 누군가는 사시(斜視)로 보기도 했다. 어떤 이는 “어떻게 광고에 나갔느냐. 나도 나갈 수 없겠느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고객 중에서 광고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도 생겼다. 기존 고객 가운데서도 “이 건물은 ‘대우증권’에 나오는 건축가 서혜림씨가 설계한 것”이라고 주위에 설명한다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정작 본인의 반응은 엉뚱했다. “뭐가 이렇게 짧아?”라는 느낌이 든 것. 사무실 책상 앞으로 걸어와 주가를 보고 기분 좋아하는 연기를 여러 번 했으나 광고에는 책상에 앉아있는 단 한 컷만 들어갔다. 1주일 내내 추워서 콧물을 흘리면서 경비행기를 몰았는데 그 장면도 ‘편집의 마술’을 통해 몇 십 초로 압축됐다. 엄마가 TV에 나오는 것을 보고 아들 지모(6)는 상당히 좋아했다.

사실 서씨의 인생 기조는 ‘펀(fun)’이다. 무슨 일에든 적극적인 그는 인생의 활력소가 된다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해는 우연히 저녁 자리에서 노래부르다 만난 재즈가수 윤희정씨의 요청으로 함께 공연무대를 갖기도 했다. “아주 야한 드레스 차림으로 무대에 섰는데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는 게 서씨의 말.

서씨의 건축가 인생도 사실 내면의 ‘재미’를 쫓다보니 이뤄진 셈이다. 그는 중학교 3학년이던 72년 음악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 언니인 피아니스트 서혜경씨가 계속 음악가의 길을 걸은 것과 달리 서씨는 의학공부를 하려고 콜롬비아대에 진학했다가 건축으로 전공을 바꿨다. 삶의 방식을 제안해 줄 수 있고, 자극을 주는 공간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 하버드대 건축대학원, 쿠퍼 유니언 스쿨 등을 거친 서씨는 경비행기도 높은 곳에서 공간을 조망할 수 있어 건축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아하기 시작했다.

여성 건축가로서 드물게 두각을 나타내다 보니 그의 활동은 다양해졌다. 서울대 연세대 홍익대 서울예술종합학교 등에 강의를 나가기도 했고, 서울시 건축심의위원이기도 하다. 올해는 매달 일주일 이상은 해외에서 보낼 만큼 일정도 바빴다. 서씨는 내년부터는 미국의 한 대학에 강의도 나갈 예정이다.

“아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육체적 성장이 끝나도 정신적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광고를 찍든 어떤 활동을 하든 재미있고, 성장할 수만 있다면 할 것이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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