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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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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이념차이 두드러진 대선▼
이번 대선은 한국 정치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3김 시대의 종식이다. 지난 40여년간 한국 정치를 지배해온 3김의 영향력이 거의 없어지고, 새로운 정치세력의 부상과 정치구조의 형성을 위한 길이 열렸다. 둘째, 정책이슈의 중요성 부각이다. 3김 시대의 종식과 지역주의의 약화로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셋째,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20, 30대의 정치참여가 크게 늘었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들의 지지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선거에서 승패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넷째, 선거방법의 획기적인 변화다. 돈과 조직이 아니라 미디어가 선거운동의 핵심적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다섯째, 정당구조의 변화다. 정당의 후보선출이 경쟁을 통해 이뤄지고, 당권과 대권의 분리가 이뤄졌다. 이것은 앞으로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한국 정치가 풀어야 할 과제 역시 부각시켰다. 첫째, 지역주의의 극복이다. 영호남의 투표성향은 여전히 지역주의의 영향을 강력히 받고 있음이 드러났다. 둘째, 서로간의 불신과 부정을 넘어 사회적 통합을 달성하는 일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세대·이념·정책간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 의견이 다른 상대방에 대해 무차별적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셋째, 건전한 공론형성의 과정을 마련하는 일이다. 국민 대중의 정서가 여과되지 않은 채 정치적 정책적 선택으로 연결되는 것은 위험하다. 여소야대의 상황이라고 해서 국회를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여론이 지지하고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정책은 아니다.
노무현 당선자는 첫 번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임자라 할 수 있다. 소위 PK 출신이면서 민주당 후보로 나섰고 호남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기 때문이다. 그가 강조하는 지역간 인사 탕평책이 제대로 실시된다면 지역주의는 상당히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당선자가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노 당선자는 강력한 이념적 지지그룹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정몽준 대표와의 공조가 파기된 상태에서 선거에 승리했기 때문에, 노 당선자의 지지세력은 이념적 정책적 순수성을 추구하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노 당선자의 대북정책 한미관계 재벌개혁 등과 관련한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이념적 대립은 서로간의 불신과 갈등을 증폭시킬 위험이 있다.
▼절제되고 신중한 정책추진을▼
민중주의의 유혹 또한 노 당선자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노 당선자는 소위 노풍(盧風)으로 성공했다. 노동자 농민 중소상인의 노 당선자에 대한 기대는 매우 크다. 특히 그의 이미지가 주는 기존 질서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발, 반엘리트주의는 변화를 바라는 다수 국민의 마음을 사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노 당선자에 대한 이들의 기대가 크면 클수록 국정운영에 대한 부담은 증가할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정부의 능력에 과부하가 걸리고 정책적 혼선을 유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 당선자는 절제되고 신중한 정책 추진을 통해 민주주의가 시장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낳는 불평등한 결과를 바로잡을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정진영 경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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