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지원/불법도청, 진실은 하나다

  • 입력 2002년 12월 1일 18시 35분


휴대전화 도청은 가능한가. “가능하다.” 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찬씨의 말이다. 지난달 3일 방송된 KBS 2TV ‘KBS저널’에 출연해 대본에 적힌 대로 질문을 던졌는데 그에게서 불쑥 나온 말이다. 순간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전직이 아닌, 현직인 신건 국가정보원장은 휴대전화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의 어조는 사뭇 단호하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가.

▼'거짓말 불감증' 만연한 사회▼

그들은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전 현직 책임자들이다. 그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전직’ 때는 기술이 좋아 도청이 가능했는데 ‘현직’ 때는 기술이 나빠져 도청이 불가능해졌다는 말이 된다. 두 분 중의 한 분의 말은 거짓말임이 분명하다.

휴대전화 도청을 포함해 국가정보원이 무차별적 불법 도청을 했는지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늘을 찌르는 국민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고, 만일 사실이 아니라면 허위발설한 쪽에서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국정원이 도청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둘 중의 하나다. 야당은 사실이라 하고 국정원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네 국민은 어느 쪽을 믿어야 하는가. 둘 중의 하나는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허원근 일병의 사망원인도 국민을 헷갈리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같은 국가기관끼리 서로가 진실게임을 하고 있다. 국방부는 자살이라 하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타살이라 한다. 국방부는 의문사위가 날조 조작했다고 하고, 의문사위는 국방부가 관련자들의 진술을 번복시켰다고 한다. 죽은 허 일병은 말이 없다. 살아 있는 진술자들 중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자가 있는 것이다.

하늘 아래 진실은 하나다. 둘이 아니다. 문제는 진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은 그 어떤 이유로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거짓말이나 은폐는 더 큰 죄악이요 범죄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입만 뗐다 하면 거짓말을 하는 지도층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래서 요즘은 너나없이 ‘거짓말 불감증’에 걸려 있다는 느낌이다. ‘거짓말 천국’인 셈이다. 뻔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뻥뻥 치는 것은 실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거짓말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자들에겐 “그 판을 떠나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작금의 불법도청 여부는 조금만 노력하면 국민적 의혹을 풀 수 있는 사안이다. 지난 50여년간 이 땅의 야당들은 수많은 폭로를 해왔다. 최근만 하더라도 YS나 DJ의 아들들 추태나 각종 게이트도 각기 여야가 바뀌긴 했지만 그 상당수는 야당들의 폭로에 기인했다. 또 국정원이 부인하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과거를 보더라도 야당의 폭로라고 해서 모든 것이 사실로 드러났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누가 이를 밝힐 것인가. 한국의 사정(司正) 체계상 그 역할은 또다시 검찰일 수밖에 없다. 국정원 관계자들을 불법도청 혐의로 모조리 처벌할 것인지, 아니면 폭로한 쪽에 책임을 물을 것인지 그 모두가 형사사건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 소신있게 조사하라▼

검찰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검찰수사에 대해 벌써부터 회의를 품는 이들이 많다. 대체로 과거의 검찰은, 특히 정치권발(發) 사건에 대해서는 온갖 궁리를 하며 좌고우면하는 경향이 있었다. 여당에 유리한가, 야당에 유리한가, 청와대 생각은 어떠한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온갖 잡생각에 휘둘려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곤 했다.

어느 쪽에 유리하고 불리하고는 검찰이 고민할 사항이 아니다. 검찰은 ‘죄’가 있는지를 찾아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하면 되지 그들의 운명까지 배려해야 할 기관이 아니다. 새 검찰상을 기대한다.

국민은 알고 싶어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를.

강지원 법률사무소 '청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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