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69…1929년 11월 24일 (20)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7시 47분


우철은 고무신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매일 드나드는 집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증오심이 구토처럼 밀려 올라와 위 주변 근육에 힘을 주어야 했다.

갓난아기는 하얀 천에 둘둘 말려 잠자고 있었다. 그 얼굴이 발바닥처럼 누렇고, 뼈대가 드러날 정도로 말랐다. 죽은 것인가? 오한처럼 온몸으로 서늘한 기운이 퍼졌다. 입술이 딱딱해지고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어색하게 느껴졌다.

“사생아로 태어나서, 에미는 쳐다보지도 않으니 그저 가엾고 가엾어서”

옥순이 무릎을 꿇고 한 손을 목뒤로 집어넣고 다른 한 손으로 엉덩이를 받쳐 자기 쪽으로 당기려고 하자, 갓난아기는 손발을 떨면서 울었다.

“에그, 가엾은 것, 착하지, 오오 착하다. 오라버니가 네 얼굴을 보려고 오셨다. 자, 예쁜 얼굴 보여드려야지. 좀 안아 볼랍니까?”

“난 그만 가보겠습니다” 간신히 말을 뱉었다.

“그렇게 금방예? 그럼 바깥까지” 옥순은 아기의 목을 받치고 있던 손을 움직여 갓난아기의 머리를 팔꿈치 안쪽에 안고 오른손으로 엉덩이와 등을 받치고 일어섰다.

“괜찮습니다”

우철은 고무신을 신고 빠른 걸음으로 여자와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에서 멀어졌다. 휭-휭-, 바람이 뺨으로 몰아치고 피부로 파고든다. 바람에 등이 떠밀려 달리기 시작했을 때에서야 우철은 자기 몸이 얼마나 경직돼 있는지를 알았다.

희향은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고 왔다”

돌아본 희향의 눈이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내아이더냐?”

“여자아이”

둘은 순간적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그리고 동시에 눈을 내리깔았다.

우철은 어머니를 등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달리고, 달려, 온 혈관으로 돌아다니는 독소 같은 분노를 큐큐 파파 증발시키고 싶어 큐큐 파파 우철은 영남루 돌계단을 하나씩 건너 뛰어올랐다. 하나 둘! 하나 둘! 팔을 힘차게 휘저으며.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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