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영찬/민주의원들 ´안개속 행보´

  • 입력 2002년 11월 5일 19시 33분


11명의 민주당 지역구 의원이 집단 탈당한 4일. 민주당 내에서 정작 집중성토의 대상이 된 것은 이들보다 당에 제명을 요구한 최명헌(崔明憲) 장태완(張泰玩) 박상희(朴相熙) 의원 등 전국구 의원 3명이었다.

이들은 제명요구의 논거로 후보단일화를 위해 탈당하고는 싶지만 전국구 의원의 경우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토록 규정한 선거법 192조가 장애가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날 민주당에는 “정당의 이름으로 국회의원이 된 전국구 의원이면서 제명해 달라는 것은 후안무치한 주장이다. 의원직을 사퇴하고 당을 떠나라”는 비난전화가 빗발쳤다.

최근 탈당설이 유력하게 나도는 유용태(劉容泰) 총장의 행보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는 3일 밤 탈당문제를 논의하는 대통령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회원들의 탈당결의장에 참석하려다 기자들과 부딪치자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배회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탈당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왔다”고 둘러댔지만 결국 모임 후 후단협 핵심멤버들과 은밀히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탈당이란 정치적 선택의 시비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표’로 당선된 정치인들인 만큼 최소한 자기행동의 명분만큼은 당당하게 밝히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얘기다.

실제 민주당 의원들의 이런 ‘안개 행보’는 탈당그룹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한화갑(韓和甲) 대표만 해도 그동안 여러 차례 “당 대표로서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돕겠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노 후보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던 부산 선대위 출범식(2일)과 서울 선대위 출범식(3일)조차 불참했다.

개별적으로 당을 떠난 강성구(姜成求) 김명섭(金明燮) 이근진(李根鎭) 김윤식(金允式) 의원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행보도 민주당 안팎에서 빈축을 사고 있다. 이들은 한나라당행에 대해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미 이들을 영입하기 위해 당지도부가 해당 지역구 원외위원장들을 설득 중이어서 수도권 소장 의원들로부터 “한나라당이 철새 도래지냐”는 반발을 사고 있다.

결국 이 같은 애매한 행보의 바탕에는 무언가 떳떳지 못하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차라리 “나는 노무현이 싫다”거나 “다음 총선에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당을 옮기겠다”고 말하는 편이 그나마 당당하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다.

윤영찬기자 정치부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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