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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1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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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의 펜실베이니아 거리에 위치한 백악관의 위용. 뛰어난 인물들이 이상과 정열을 펼쳐온 자리이지만 몇몇 여성들에게는 절망과 좌절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 자리’는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니다. 제도에 의해 보장된 자리가 아니지만 어떤 국가기관 못지 않은 권력의 근원이다. 대통령 지근거리의 고문이자 보좌역 그리고 비서로, 때로는 ‘국민고충처리위’나 ‘여성부’ 역할을 일부 떠맡는 경우도 있다.
어떤 자리나 그렇듯이, 형식적으로 수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극적 권한행사를 넘어 월권을 밥 먹듯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이를 인위적으로 교체하고자 하는 집권자가 있다면 극히 위험한 개인적·정치적 도박을 감내해야 한다. 이 직책을 우리는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라고 부른다.
우리가 왜 이 사람에 관심을 갖는가. 그가 꿈꾸는 것이 역사를 구원할 수 있으며, 그가 사랑하고 열망하는 것이 시대를 암흑으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엄밀히 말해 그들 또한 ‘선출되기’ 때문이다. 가장 정확한 의미에서의 ‘러닝 메이트’(대선 동반자)가 바로 그들이며, 우리 또한 머잖아 한 사람의 ‘그’를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퍼스트 레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저자의 시선은 권력의 정상에 있는 부(婦)와 부(夫)에 동등하게 향한다. 우드로·이디스 윌슨에서 조지 w·로라 부시에 이르는 미국 대통령 부부들의 파트너십을 통해, 이 책은 ‘도취와 고독의 직업’인 대통령과 퍼스트 레이디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역사를 조종하거나 역사에 조종당하는지 보여준다.
(별점은 책의 내용을 참고한 책의 향기팀의 평가. ★★★★★〓수 ★〓가)

●재클린 케네디:스타형 ★★★★
31세의 나이로 백악관에 입성한 재클린은 ‘백악관이라는 무대의 뛰어난 배우’ 였다.
재클린과 케네디의 결합은 루스벨트나 클린턴 부부처럼 전략적 측면이 있었지만 재클린은 자신의 재능을 ‘정치적’ 측면에서 발휘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 달랐다. 케네디의 바람기에도 불구하고 부부의 애정은 의심받지 않았다.

●이디스 윌슨:인(人)의 장막형 ★
임기 말년, 윌슨은 치명적인 건강 이상을 겪고 있었다. 이디스 윌슨은 백악관 문을 닫아걸고 정보 흐름을 통제한 채 대통령이 서명할 문서 대부분을 자기 자신이 검토했다.
그는 훗날 ‘우드로는 내가 온힘을 다해 생명을 구하려고 했던, 사랑하는 남편이었다. 그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그 다음 문제였다’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그 사랑으로 인해 미국의 국익은 손상을 겪었다.

●엘리너 루스벨트·힐러리 클린턴:자립형 ★★★★
두사람 모두 타고난 행동주의자이며 개혁가였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완가였다. 남편과의 관계가 일부 또는 전부 ‘성(性)을 배제한 결합’ 이었다는 점도 공통된다.
루스벨트와 클린턴 모두 끊임없이 새로운 여성들과 관계를 만들어나갔다. 두 퍼스트 레이디는 남편을 용서한 댓가로 대중과 남편에게서 탄탄한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대중이 항상 이 ‘똑똑한 여성들’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레이디 버드 존슨:명조언자형 ★★★★★
나라가 격변에 휘말렸을 때 떠밀리듯 백악관에 들어온 레이디 버드 존슨은, 남편은 물론 침울에 빠진 국민까지 안도케 한 현명한 여인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이나 연설 등 일상업무에 대한 가장 따끔한 비판자였지만 달콤한 칭찬을 섞어 비판이 효과적으로 소화될 수 있도록 했다. 케네디의 잔여임기를 채운 뒤 출마를 주저하는 남편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사람도, 68년 재선 도전 포기라는 결단을 내리게 한 사람도 레이디 버드였다.

●낸시 레이건:역할 주도형 ★★★
레이건은 정치적 결정에 필요한 직관을 상당부분 가지고 있었지만 결정 이전의 분석은 낸시에게 의존했다.
레이건의 가장 큰 철학은 ‘최고의 인재를 발굴하여 주위에 앉힌 다음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으나 정작 인사문제의 상당 부분을 그는 아내에게 양보했다.
8년간의 대통령직 수행은 낸시 주도하에 레이건이 함께 이루어낸 작품이었다.

●로절린 카터:동일시형 ★★★
카터 부부를 만난 한 정치가는 “나는 방금 두 명의 지미 카터를 만났소”라고 말했다. 로절린은 엘리너 루즈벨트처럼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려 했으나 남편과 완벽히 동일한 목소리를 내려했다는 데서 차이를 보였다. 각료회의에 배석하고자 한 그의 결정은 부정적인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팻 닉슨:소외·고립형 ★★
닉슨은 오로지 자신의 모든 열정을 정치에만 쏟아넣고 모든 결정에서 아내를 제외시킴으로서 퍼스트 레이디를 철저히 소외된 존재로 전락시켰다. 사임을 알리는 기자회견 마저 한 마디 상의 없이 이루어졌다.
어떤 퍼스트레이디를 선택할 것인가? 거의 모든 유형이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다. 배우자인 대통령의 개성에 따라 바람직한 유형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누구도 ‘인의 장막’에 갇힌 대통령을-만약 경험한 적이 있다면-다시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수립 후 우리가 만나온 ‘영부인’ 들은 어떤 유형에 속할까. 다음 5년의 국정에 이런 저런 형태로 참여하게 될 ‘첫번째 부인’ 후보들은 어떤 꿈과 이상을 갖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왔을까.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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