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이연자/"아버님 컴퓨터 가르쳐 드릴테니 채팅"

  • 입력 2002년 10월 3일 18시 01분


세월을 거슬러 유년시절 얘기다. 새벽녘, ‘부스럭’ 하는 소리에 살며시 눈떠 ‘어른도 공부를 하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던 기억이 난다. 일제강점기 때 심상소학교를 마친 아버님께서는 마흔에 화약폭파기사 자격증을, 환갑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셨고, 일흔이 훌쩍 넘어서도 현장을 넘나들며 그야말로 오뚝이 인생처럼 살아 오셨다. 하지만 세월은 어찌 할 수 없었다. 며칠 전 아버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더니 음성이 마치 물먹인 화선지인 양 풀기없이 느껴졌다. 여느 때와 다른 느낌이 들어 자세히 알아보니 직장에서 밀려난 지 꽤 되셨지만 자식들에겐 비밀로 하셨던 모양이다.

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이제 ‘고령화 시대’는 이웃나라가 아닌 우리의 현실이 됐다. 사실 웃어른들의 경륜과 지혜는 보석 같은 존재며 무형의 자산이기에, 더 이상 노인들을 나이라는 틀에 묶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든든한 울타리 역할은 그분들의 몫으로 남겨 둬야 할 것이다. 현대의학의 혜택으로 젊은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건강하고 뜨거운 열정만 식지 않는다면, 나이와 무관한 백살의 젊은이도 많을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내일은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이 시대의 동반자로서 도우미 역할을 자청하고 싶어서다. 그리고 요즘엔 컴퓨터를 모르면 현대인 축에 못 낀다며 다소 억지 주장도 할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이 못난 딸이 무보수 출장을 갈 예정이라는 것과 컴퓨터를 열심히 배워두면 멋진 할머니와 ‘채팅’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라고 말씀드려야겠다.

이연자 광주 서구 풍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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