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35…돌잡이 (1)

  • 입력 2002년 9월 29일 18시 09분


4월의 미풍이 민들레, 냉이, 제비꽃 등의 이른 꽃과 미나리를 뜯는 여인네들의 고름을 같은 방향으로 나부끼게 하고는 있지만, 엷은 구름을 뒤집어쓰고 잠에 빠져 있는 하늘을 흔들어 깨울 것 같지는 않다. 봄 여자, 봄 꽃, 봄 나비, 봄의 물, 봄의 물고기, 하늘 아래 모든 것이, 하늘이 꾸고 있는 감미롭고 따분한 꿈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듯 하다.

“올 아랑제 동기는 쌀가게 김씨네 서영이하고 면서기네 큰딸하고, 정순이가 한다 카든데”

“뭐라? 정순이가? 벌써 나이가 그래 됐나?”

“여자아이는 눈깜짝할 새 처녀가 된다 아이가”

“얼마 전까지 콧물 찔찔 흘리고 맨발로 돌아다녔는데”

“미인이라더라”

“우리 아들 놈 며느리 삼을까?”

“무슨 소리고, 미인은 다 소용없다, 예쁘다고 저 잘난 줄 안다. 건강하고 일 잘하고 애들 쑥쑥 잘 낳아야 좋은 며느리지”

“애들 쑥쑥 잘 낳는지 우짠지를 어떻게 아노”

“아이구, 척 보면 다 안다. 허리가 튼실하고 엉덩이가 큰 색시는 틀림없다”

“그럼 조씨네 기향이는 어떻노? 기향이라 카면 내 우찌 해 볼 수 있는데”

“아들놈이 잘난 것만 좋아해서”

“아이고! 남자들은 다 잘난 여자 좋아한다, 하지만 며느리는 남편한테만 필요한 게 아이거든, 시아버지 시어머니한테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얼굴은 그 다음이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여인네들의 노랫소리가 높아진 탓인가, 바람이 세진 탓인가, 낚싯대와 망태를 든 남자가 강둑을 내려온 탓인가 분명하지 않지만, 하양, 빨강, 보라, 노란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하얀 노란 나비들이 하늘거리는 풀숲에서 작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바람을 타고 오르내리면서 신사와 아랑각이 있는 아동산(衙東山)의 수목들 사이로 날아갔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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