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개구리 소년´ 선입관 수사

  • 입력 2002년 9월 27일 18시 30분


실종된 지 11년반 만에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발견된 개구리 소년들의 비보를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었다.

우선 온 국민이 제 자식이나 가족을 잃어버린 것처럼 한동안 가슴 아파했던 소년들이 집에서 불과 3.5㎞ 떨어진 야산에 매장돼 있었다는 점이 그랬다.

또 연인원 30만명 이상을 동원해 온 산을 ‘이 잡듯이’ 뒤졌다는 군과 경찰의 수색 작전을 생각하면 더욱 한심한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런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현장 감식과 사인(死因)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경찰의 태도다. 경찰은 소년들의 사인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사고사로 단정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27일 사고 현장에서 지름 1.2㎝짜리 탄두와 실탄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발굴 현장에서 400∼500m 떨어진 지점에 군부대가 운영하던 예비군 사격장이 있었다”며 탄환과 죽은 아이들과의 연계성을 미리 차단하려는 듯한 인상을 줬다.

발견 현장에 있는 경찰관들도 “아이들이 헤매고 돌아다니다 추워서 움푹 파인 데 들어갔다가 흙이 무너지면서 죽은 것 아니냐” “이유 없이 5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죽일 리가 있겠는가” “아이들을 살해한 뒤 묻었다면 왜 이곳까지 끌고 와서 묻었겠느냐”는 등 사고사로 몰아가려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기는 말들을 흘리고 있다.

수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선입관’이다. 우연히 진범이 잡히는 바람에 살인 혐의를 벗은 사람도 있었고, 단지 전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범으로 몰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도 있었다. 모두 소홀한 초동 수사와 섣부른 ‘단정’이 부른 비극이었다.

소년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11년반 동안 가슴 졸이며 살아온 가족들이 정확한 사인도 모른 채 자식들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게 할 수는 없다. 경찰은 유족들의 심정을 헤아려 ‘왜?’라는 의문을 풀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이훈기자 사회1부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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