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계사의 말발굽 ´집사 1-부족지´

  • 입력 2002년 9월 27일 17시 16분


‘집사’는 이슬람식 역사기법을 활용해 세계사를 서술하고 있다. 사진은 몽골 유목민.동아일보 자료사진
‘집사’는 이슬람식 역사기법을 활용해 세계사를 서술하고 있다. 사진은 몽골 유목민.동아일보 자료사진
◇집사 1-부족지/라시드 앗 딘 지음 김호동 역주/364쪽 2만원 사계절

‘집사’가 우리 말로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흐뭇했는데 번역본을 보니 감개무량하다. 중동과 이슬람 학계에서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한국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 그 저자 라시드 앗 딘과 ‘집사’의 내력을 소개하는데 그칠까 한다. 사실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일연의 삼국유사 같이 정평이 나 있고 자타가 다 알고 있는 고서(古書)를 평한다는 자체가 너무 당돌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서문에도 밝혀져 있듯이 러시아어와 영어로는 완역본이 있으며 그 외에도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로는 부분적으로 번역되었다고 하니 가히 그 유명세를 짐작할 만하다. 또 이 책의 주요내용이 우리의 이웃인 몽골족에 관한 것과 우리나라에 관한 것도 몇 줄 들어 있어 더욱 흥미롭다. 그 몇 줄은 매우 구체적이어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단지 고려라는 이름을 언급한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이란의 하마단에서 약종상의 아들로 태어난 라시드 앗 딘(1247∼1318)은 30세에 유대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고 하는데 그의 직업은 의사였다. 몽골제국의 일칸조에서 통치자 아바카에 의해서 등용되어 그의 두 후계자 가잔과 울제이투의 통치 때 재상으로 봉직하는 등 여러 몽골 군주를 섬겼다. 도시 건축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후에 모략에 걸려 처형당했다. 그는 ‘집사’ 외에도 동식물에 관한 책과 코란주해서 같은 책을 아랍어로 집필한 대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집사’ 중에도 제1권에 속하는 몽골족의 역사에 덕본 바 크다. 그 이유는 몽골족의 역사에 관한 사료(몽골어, 한문 포함) 가운데서 최고(最古)로 손꼽히고 또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은 한국이나 중국의 정설 위주의 정사(正史) 집필 방식과는 달리 이슬람식 역사 기법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것은 한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아무런 비평도 없이 모두 나열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그 분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또 중동 문헌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라비안 나이트(千日夜話)에서 보듯이 이슬람 문헌, 특히 역사서는 세계를 무대로 이슬람교도를 주인공으로 삼고 나머지 각 인종을 조역으로 삼아 폭 넓은 이슬람식 보편적 세계관을 내놓은 것이 상례였다. 이러한 방식에 따라 라시드 앗 딘도 이슬람화 된 몽골 일칸조를 주역으로 삼아 세계사를 집필한 것이다.

그에게 이 임무를 맡긴 가잔 칸(재위 1295∼1304)은 일칸조의 역대 군주 가운데 처음으로 이슬람에 개종했다. 이 군주는 몇 만 명에 불과한 이란 주재 몽골족은 오래지 않아 이란화 될 것으로 보고 일칸조를 비롯한 몽골족의 역사를 페르시아어(이란의 국어)로 된 책으로 후대에 남기고 싶어서 재상 라시드 앗 딘을 그 집필자로 택했다. 재상은 막강한 관료로서 당시 일칸조 정부 소관 사료는 물론이고 가잔 칸과 발라드 칭상(이란 주재 원나라 황제의 대리인)을 비롯하여 많은 몽골인들로부터 직접 몽골족의 역사를 듣고 집필했기에 그 내용이 참신하다.

‘집사’라는 저서명 자체도 지구상의 수많은 지역과 인종들이 남긴 연대기를 결집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기에 여기서 그 세계성과 보편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몽골족을 핵심으로 집필했지만 이슬람식 역사기법을 그대로 활용했기에 그 내용은 인류의 기원인 아담, 야곱의 열 두 아들, 예언자들, 이란 왕들의 역사와 무슬림 왕조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또 유대인, 아랍인, 이란인, 터키인, 몽골인, 중국인, 인도인 및 심지어 불교도 등을 포함한 모든 통치자 가문의 계보도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중점적으로 취급한 것은 곧 몽골족이다. 또 몽골족의 사촌격인 투루크족의 역사도 함께 취급했기에 두 종족간의 관계와 상황 인식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 몽골과 투르크족을 취급한 것이 제1권 ‘부족지’이다. 그 내용은 몽골족과 투르크족의 유목집단과 그 구성에 따른 것인데 오구즈족, 몽골이라 불리게 된 투르크족, 원래부터 몽골이라 불리던 종족으로 나뉘어 있다. 이 몽골과 투르크족도 철저하게 중동의 경전(성경, 코란)에서 그 영향을 받았기에 아담, 아브라함 및 노아의 자손으로 접목시킨 점이 이채롭다.

이 책의 출간은 이번 가을에 중앙아시아와 이란학계가 거둔 큰 수학이다. 아무쪼록 제2, 3, 4권이 완역되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방대한 이슬람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기를 역자 김호동 교수와 출판사 사계절에 기대하면서 끝으로 이 책의 출간에 바친 노고에 감사의 말을 바치고 싶다.

김정위 한국 외국어대 교수·이란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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