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우철/위헌 ´서리制´ 이제 그만

  • 입력 2002년 8월 4일 18시 19분


“국무총리서리께서는 이러한 헌법의 명칭도 없는… 그러한 것이 헌법에 수긍이 되어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여하간 국무총리서리의 입장으로서… 헌법의 어느 조문에 의해 그러한 답변을 했다, 여기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6·25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던 1952년, 당시 허정 국무총리‘서리’를 질타하던 김광준 의원의 국회 발언이다. 이로부터 꼭 50년의 세월이 흐른 2002년, 국회는 ‘쫘압’(job)과 ‘로온’(loan) 때문에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다는 장상 국무총리‘서리’ 임명동의안을 압도적 다수로 부결시켰다. 목하 대통령은 국무총리 권한대행체제를 가동하지 않고 재차 국무총리‘서리’를 지명할 의중으로 국정을 사실상 중단시키고 있다.

▼대행체제 가동 안해 국정중단▼

로마 황제 카라칼라는 공동통치자인 동생 게타를 살해한 뒤 법률가들에게 그 패륜행위를 법적으로 정당화할 것을 명령했다. ‘군(軍)’과 ‘신(神)’과 ‘법(法)’으로써 유럽을 세 번 통일했다는 로마의 법률가 파피니아누스는 황제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고 기꺼이 살해당했다. “동생을 살해한 것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기란 동생을 살해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서. 국무총리‘서리’의 위헌 논란을 둘러싼 헌법학자의 대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헌법 규정의 위반을 헌법적으로 정당화하기란 헌법 규정을 위반하는 일보다도 훨씬 어렵다.” 단순한 ‘헌법 위반’이 ‘헌법 관행’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건국헌법은 대통령의 권한대행자로 부통령을 두면서 국무총리의 임명은 국회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했다. 반면, 현행 헌법은 국무총리를 대통령의 권한대행자로 하면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즉, 임명직 국무총리가 직선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데 따른 민주적 정당성의 결여를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통해 보충하도록 한 것이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건국헌법의 문언과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현행 헌법의 문언은 그 차이점이 너무나 명백하다. 즉, 전자는 ‘선임명 후승인’을, 후자는 ‘선동의 후임명’을 각각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국무총리‘서리’ 임명의 위헌성을 어떤 법 절차를 통해 주장하느냐는 데 있다. 1차적으로는 ‘정치적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하지만 1998년 김종필 국무총리‘서리’의 임명동의안을 둘러싼 대통령과 국회의원들간의 권한쟁의사건(98헌라1)에서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들의 심판청구를 각하해 버렸다. 9인의 헌법재판관 가운데 2인은 국회의원의 당사자 적격을 아예 부인했고, 3인은 다수 의원, 다수당 의원의 당사자 적격을 부인했으며, 1인은 “신임 대통령이 새 행정부를 구성해야 하는 예외적 상황에서는 서리 임명이 허용된다”는 기각 의견을 개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헌법재판소는 종래의 결정을 변경해 국회의원의 당사자 적격을 인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킬 수 있는 재적 과반수의 다수 의원, 다수당 의원(교섭단체)은 현재의 국회 의석분포에서는 존재하지 아니한다. 또 지금 문제된 상황은 현 정부의 출범 초기와 같이 ‘서리’ 임명이 정당화될 여지가 있는 예외적 상황도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가 다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청구사건으로 제기된다면 1998년과는 다른 판단이 내려져야 마땅할 것이다.

▼´서리´는 없어져야 할 유산▼

50년 전 우리 정치인은 전쟁이라는 비상상황과 목숨을 위협하는 집권당의 강압, 그리고 땃벌떼 백골단 등 정치깡패의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의연한 태도로 국무총리‘서리’의 위헌 문제를 감연히 제기했다. 5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국회의 ‘사전동의’를 요구하는 헌법의 명문 규정이 있고, 헌법 규정을 위반한 권한침해에 대해 이를 심판하는 헌법재판소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대통령의 위헌적인 권한 행사를 감시하는 국민의 눈이 있다. 만시지탄은 있지만 국무총리‘서리’는 우리 헌정사에서 하루빨리 추방되어야 할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퇴행기관’일 뿐이다.

구직에 지치고 빚에 쪼들리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간다. ‘쫘압’에 멍들고 ‘로온’에 찢긴 국민의 아픔을 진정 자신의 일처럼 마음쓸 수 있는 분이었다면, ‘당론’의 강제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진 국회의원들이 임명동의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그를 굳이 ‘서리’로 임명하는 편법까지 쓰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신우철 영남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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