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7월 21일 18시 3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1994년 이후 붕괴된 식량배급제가 회복됐다는 조짐은 아직 없다. 진정한 시장 지향의 경제개혁 단행에 관한 북한의 공식적 발표도 아직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2일 ‘민주조선’에는 ‘원에 의한 통제’라는 화폐적 경제통제 시책에 관한 해설기사가 실렸다. 이 ‘원에 의한’ 화폐적 통제는 주로 ‘계획과 계약이 없는 온갖 비법적인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통제한다’는 데 역점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북한의 계획경제를 혼란에 빠지게 한 비법적인 장마당 거래에서 비롯되는 소득 격차를 척결하겠다는 뜻이다.
▼경제혼란 악순환의 신호탄▼
7월의 ‘원’ 통제는 북한 화폐에서 ‘전’(1원의 100분의 1) 단위를 없애고 1원을 최하 단위로 해 ‘원’의 가치를 10분의 1로 명목 절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평양 지하철 요금이 10전에서 1원으로 대폭 인상되었다고 전했다. 노동자 등의 월급이 10배 인상되고 특히 군 간부와 관료의 급료는 14∼17배로 대폭 인상 조정되었다는 것이다.
7월의 10배 물가인상과 10배 월급인상은 1 대 1이어서 원통제 경제조치가 왜 필요한지 이해하기 난감하다. 그러나 92년 7월 북한은 1 대 1 신구 화폐 교환을 단행한 전례가 있어 1 대 1이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정책적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1 대 1 신구 화폐 교환 때는 399원만을 신화폐로 바꾸어 주고 그 이상은 모두 동결시켰다. 다시 말해 장마당의 ‘비법적’ 사경제에서 생긴 소득격차를 399원 균일의 평등으로 만든 것이다.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재건하기 위해 ‘결과의 평등’을 강행한 정책이었다.
꼭 10년 만인 이번 7월의 1 대 1 ‘원’ 통제도 역시 사경제 탈법소득을 10분의 1로 깎아내리는 소득 평준화 효과가 있다. 그 대신 시장적 음성소득이 없는 군 간부와 관료의 급료는 무려 17배까지 대폭 올렸다. 단번에 1700% 급료 인상이라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7월 이전의 군 간부는 17분의 1의 박봉으로 생활고가 막심했고 불만도 컸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북한의 식량난인데 이번 조치로 1㎏당 10∼20전에 배급하던 쌀을 자유시장 가격인 45원에 판매할 계획이라는 것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90년대 중반 쌀 1㎏의 국정가격이 8전일 때 시장가는 80원으로 그 격차는 무려 1000배였다. 1㎏ 45원도 이전 배급가의 400여 배다. 이런 암거래 시세에서는 식량과 생필품이 제대로 배급되지 않고 대부분 암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중앙통제 경제의 허점이다.
물물교환과 외화 선호로 북한 돈은 쓸 것 없게 되어 ‘비화폐 경제’가 되었다. 이번 경제조치들이 북한 화폐의 기능을 되살리는 전환점이 되기에는 아직 정책적으로 부족하다. 오히려 더 큰 경제혼란의 악순환의 시작인 것 같다. 북한은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개인 영농 복귀로 생산의욕을 향상시켰던 중국 덩샤오핑식 개혁으로 들어설 징후도 아직 보여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북한의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주체사상부’를 신설하는 등 사상 동원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아직도 먼 개혁 개방의 길▼
북한의 경제난과 장마당 사경제의 확대 앞에서 다급한 식량난 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이나 베트남형의 시장 사회주의적 개혁 외의 다른 선택이 없는 것은 자명하다. 과거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혁 개방에는 시장지향의 개혁파에 의한 세력 교체가 있었으나 북한에는 그것이 아직 없다.
오히려 7월 초의 북한 식량배급제 폐지 소식은 식량배급의 포기요 구 체제 고수에 기진맥진한 데서 생긴 것으로 시장경제의 꿈을 잠꼬대하는 과도단계에 불과하다. 이미 북한 화폐에서 ‘전’ 단위를 없앤 만큼 쌀 1㎏에 8∼10전 하는 배급가격은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현 시장가인 45원에 접근한 쌀 통제가격은 전반적 물가인상의 일환으로 조정된 것에 불과하다.
이런 ‘북한 소식통’의 말을 해독해보면 북한의 식량난이 이제는 배급포기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식량 소요단계에 들어선 진퇴유곡의 고민을 ‘시장지향 개혁’으로 능란하게 미화하는 소식통 방식을 통한 홍보의 냄새도 풍긴다.
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철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