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72…아리랑(11)

  • 입력 2002년 7월 14일 17시 48분


학생들은 ‘교육 칙어’란 말에 등을 꼿꼿이 세우고 턱을 잡아당겼다.

“23페이지를 펴라. 누굴 시킬까, 백군. 사행과 다행과 바행의 발음에 주의하면서 큰 소리로 읽어 봐라”

선생이 지목한 백유용은 헛기침을 하여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낭독하였다.

“제12 신을 섬기라. 우리 나라에는 어디를 가던 신사가 있습니다. 이들 신사에는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을 비롯하여 대대의 천황과 나라를 위해 공적을 쌓은 사람들이 모시져 있습니다. 경성의 조선신궁(朝鮮神宮)은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와 메이지 천황을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옛부터 신을 섬기는 마음이 두터버, 성심으로 신사를 참배합니다. 우리덜도 참배를 하여 신을 잘 섬기야만 합니다”

“잘 읽었다, 아까보다 훨씬 낫구나. 하면 할 수 있지 않냐. 백군은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냐?”

“우리들은 매일 아침 영남루 위에 있는 신사를 청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사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을 청소하는 것입니다”

“잘 말했다. 신사 청소는 집이나 학교를 청소하는 것하고는 의미가 다르다. 신사에는 천황폐하가 계신다 여기고, 두 손 모아 합장하는 마음으로 청소하지 않으면 벌받는다. 알겠냐?”

“네” 백유용은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 팔 내리지마!”

윤정학과 강종오는 이를 앙물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이군, 교육칙어를 봉독해 봐라”

이우철은 소리나지 않게 일어나 선생의 왼쪽 귀 언저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심호흡을 했다. 막히거나 빼먹으면 회초리다.

“짐은 우리 황조황종국이 원대한 뜻과 심후한 덕에 바탕하여 시작된 나라라 생각하노라. 우리 신민은 실로 충하며 실로 효하고, 억조의 마음을 하나로 합하여 길이길이 그 미덕을 행하여 왔으니 이는 우리 국체의 정화이며 또한 교육의 연원이니라. 너희 신민은 부모에 효하며 형제에 우하고 부부 상화하며 붕우 상신하고 공검하게 이를 지켜 서로를 박애하며, 학문을 닦고 일을 배워 이로써 지능을 계발하고 덕과 기를 성취하며 나아가 공익을 떨치고 세무를 열며, 상시 국헌을 존중하고 국법을 따르며, 일단 비상시에는 의와 용으로 봉사하고, 이로써 영원무궁한 황군으로 부익하라. 그래야 마땅히 선량하고 충성스런 신민이며 또한 조상의 유풍을 현창하는 일임이라. 이 길은 실로 우리 황조황종의 유훈이며 자손인 신민이 존수해야 할 바, 이를 고금을 통하여 지키며 이를 안팎으로 널리 퍼뜨려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 짐 또한 신민과 공히 권권복응하니 모두 이 덕을 제일로 삼기를 염원하노라”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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