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공직자 부인의 ´내조´

  • 입력 2002년 7월 3일 19시 04분


성공한 고위공직자의 뒤에 아내의 ‘헌신’이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 전직 장관의 사례는 ‘내조’의 힘을 보여준다. 이 전 장관의 부인은 남편이 초임 공무원시절부터 늘 남편 상사의 집에 살다시피 했다. 김장을 대신 해주고 아이들을 돌보는 등 마치 자신의 일을 하듯 상사의 집에 정성을 다했다. 이를 고마워 한 상사 부인은 ‘무엇을 도와줄까’하고 물었고 남편을 통해 그 소망을 해결해 주었다. 이 때부터 남편은 승승장구, 결국 장관까지 올랐다.

▷남편의 직위를 이용해 부귀영화를 탐하는 고위공직자 부인들의 경우도 많았다. 남편의 출세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일수록 보상심리 차원에서 그런 일이 많다고 한다. 99년 이른바 ‘옷 로비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장관급 인사 부인들의 사치스러운 모임이 구설수에 올랐고 마침내 온 나라가 이들의 ‘옷 로비사건’으로 시끄러웠다. 국민은 누구보다 모범이어야 할 고위공직자 부인이 그처럼 비싼 옷을 선물로 받는 것은 열심히 사는 보통사람들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정권에 등을 돌렸다. 따지고 보면 이 정권의 위기는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임창열(林昌烈) 전 경기지사의 부인인 주혜란(朱惠蘭)씨가 남편이 지사이던 지난해 경기 성남시 분당파크뷰 아파트 건축 승인청탁과 함께 1억원의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주씨는 99년 임 지사 생일 때 각계인사 100여명을 지사공관에 초청해 호화파티를 열어 비난을 받은 적이 있고 또 퇴출 위기에 놓인 한 은행으로부터 구명로비를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거액을 받아 구속된 일도 있다. 누구보다 자숙해야 할 주씨가 또 뇌물을 받았다니 어이가 없다. 고위공직자 부인의 처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후진적 정치환경에서 고위공직자 부인이 로비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돈을 받은 부인은 남편이 전혀 이 사실을 몰랐다고 잡아떼고 남편도 이에 동조한다.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97년 초 한 국책은행 감사역 부인이 대출과 관련해 2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 부인은 당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남편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은 이랬다. “당사자는 남편이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알았을 개연성이 높다” 고위공직자 부인들이 꼭 기억해야 할 판례다. 동서고금을 통해 욕심 많은 부인 때문에 하루아침에 허무한 종말을 맞은 고위공직자가 어디 한둘이던가.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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