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국과 닮은 꼴 아일랜드 읽기 '슬픈 아일랜드'

  • 입력 2002년 6월 28일 18시 23분


◇ 슬픈 아일랜드/박지향 지음/400쪽 1만6000원 새물결

아일랜드하면, ‘감자 대기근’이나 북아일랜드를 둘러 싼 정치적 분쟁,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섬나라 정도가 떠오르는데, 그 나라 역사를 조금만 들춰 보면 놀랍게도 우리 나라와 닮은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국이라는 강대국 곁에서 겪은 한(恨)과 수난의 역사, 맹목적인 애국심, 음악과 춤, 술을 즐기는 성향, 정열적이고 감정적인 민족성 등 우리와 아일랜드는 닮은 꼴인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실제로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일 월드컵 관련기사에서 “한국인들은 ‘아시아의 아일랜드인들’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음악, 춤, 술을 즐긴다”고 쓰기도 했다.

19세기 중반 백만 명이 넘는 인구가 굶어죽은 못 살았던 나라에서 최근 일약 세계의 IT(정보기술) 강국으로 부상한 현재 역시 오늘날 우리 나라 역사나 발전상과 흡사하다. 유럽에서 우리와 가장 닮았으면서도 또 다른, 아일랜드에 대한 성찰은 우리 역사에 대한 반성과 전망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 책은 역사와 문화를 통해 본 흔치않은 아일랜드 연구서다. 저자는 아일랜드 역사에서 정치적 혼란과 충돌이 심했던 1880∼1920년대를 중점으로 아일랜드를 서술한다. 이 시기에는 민족주의 기치 아래 각종 연맹과 단체가 창설되고,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이 등장했고 자유국가 북아일랜드가 탄생하는 등 그야말로 근대 아일랜드가 ‘만들어진’ 격변의 시기였다. 이러한 격동기를 중심으로 저자는 아일랜드의 복잡하게 얽힌 근대사와 현재까지도 진행중인 민족 정체성(‘아일랜드성’)을 둘러싼 갈등을 분석하고 있다.

또, 과거 아일랜드 민족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비참한 나라’ 라는 이미지에 집착하여 오랫동안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지금 일부 아일랜드 지식인을 중심으로 이러한 편협한 역사 의식을 버리고 자국의 역사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러 모로 우리가 가장 많이 배워야 할 유럽 국가라는 것이다.

격동기 영국계 아일랜드 작가들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현해탄 컴플렉스’에 시달렸듯 런던과 더블린 사이에 서서 고뇌했다.

아일랜드는 20세기 초 제임스 조이스, 예이츠, 버나드 쇼, 베케트 등을 배출한 세계 문학의 중심지이자 보고였다. 더블린 출생으로 영어로 글을 쓰고 영문학 전통도 의식해야 했지만 동시에 역사와 전통을 삶과 작품 속에 표출해야 하는 이중적 상황에 처해 있던 작가들의 고뇌의 창조의 고통, 갈등과의 투쟁과 극복이 그들을 세계 문학의 위인들로 우뚝 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슬픈 나라’ 아일랜드의 역사와 함께 세계 문학사의 위대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우리의 초상을 발견하게 된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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