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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6월 18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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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돌담이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또 길어졌네요. 연세도 있으신데 쉬엄쉬엄 하시지요.
▽박경리〓젊었을 때는 ‘나이 들면 주름살도 지고 얼마나 추할까’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생각해보니 나이가 들어서 더 편해진 것 같아요. 주름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고, 생활도 간소해졌어요. 일종의 ‘해방’이지요. 일이라는 것도 해방의 수단이에요. 일을 하다보면 생각에서 놓여나지요.
일 자체는 ‘이득’에서도 ‘도덕’에서도 독립된 것이에요. 일을 하며 누리는 공간과 시간이 내게 자유를 줘요. 해가 뜨기 시작하면 자꾸 바깥을 봐요. 얼른 일하러 나가고 싶어서. 밤은 싫어요. 일을 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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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천 교수 |
젊을 때는 개인에 대해 늘 분노가 치밀었고 모든 것이 내게 상처로 왔지만, 이제는 이 늙은이에게야 뭐라고 하든 어떻게 하든 아무러면 어떻겠냐는 생각이 들어요. 대신에 이제는 세상이 바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면 화가 치밀어요.
▽최〓선생님께서는 이전에 환경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환경이자론’으로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원금 까먹지 말고 살라는 것이었지요.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요즘 사람들은 자손의 것을 카드로 대출해 사용하고 있는 셈일 겁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이자’만 갖고 살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박〓요즘 사람들은 겉으로만 부자고 속은 거지예요. 명예, 벼슬 같은 겉치장이 없어도 ‘따신 내(따뜻한 느낌)’가 나는 집이 있어야 해요.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생활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시장에 가보면 ‘의식주’와 관계없는 것이 더 많아요. 사람이 윤리 의식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하나도 자랑이 아니에요. 동물은 생존할 만큼만 먹지만 사람은 과하게 축적을 해요. 어떤 면에서는 윤리의식이 없는 동물이 훨씬 낫지요.
▽최〓사람들은 동물과 인간을 비교하면서 ‘동물도 생각할 줄 아는가’, ‘IQ는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잣대를 동물에 대는 것은 올바른 비교가 못 되지요. 밤에 산꼭대기에 인간과 동물을 함께 풀어놓고 ‘집을 찾아 오라’고 한다면 그건 두말할 것 없이 인간이 지는 게임입니다. 우리는 자연에서 배운 것을 지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연계의 그 엄청난 ‘지식’ 중의 극히 일부만을 우리가 문자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한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학문체계에 맞도록 정리해 놓은 것만을 지식이라 부르는 오만을 저지르고 있어요. 바로 이 오만이 생명 경시 풍조를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사람들은 ‘새가 노래한다’ ‘새가 운다’ ‘나비가 춤을 춘다’고 말해요. 그런데 나비가 날아가는 것은 꿀을 찾는 노동이에요. 새가 노래한다는 것도 슬픔의 표현이거나 무언가의 발견 등을 전하는 하나의 언어예요. 진실과 먼 인간의 잣대를 대단한 듯이 ‘표현’이라고 쓰지요. 문학 역시 ‘나비가 춤을 춘다’는 의식으로 해서는 안 돼요. 문단에서도 내가 극복하려고 한 것이 바로 유미주의였어요. 생존하는데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로 중요하겠어요? 아름다움이란 ‘진실에서 우러나는 치열성’이에요.
▽최〓동물의 입장에서 생명을 넓게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어느 모임에서 철학자와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어요. 그 철학자는 “내가 공격을 받을 줄 안다. 그러나 인간이 중심에 서 있지 않고서는 어떤 논리도 정립되지 않는다”고 말했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우리보다 더 막강한 종이 나왔다고 상상해 보라”고 응수했어요. 그 막강한 종에 마구잡이로 유린당하며 뒤늦게 모든 생명의 권리를 부르짖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는 것이지요.
박 선생님께서 좀 전에 ‘유미주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아름답다’는 말은 ‘안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해요. ‘앎’에서 ‘아름다움’이 나온 것이지요. 탐미가 아니라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 ‘아름답다’는 말에 포함되어 있어요. 제가 저의 책 제목을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라고 지었을 때에도 그런 뜻이 담겨 있었어요.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모르기 때문에 해치는 것이지요.
▽박〓그러나 오늘날은 그런 의미가 사라졌어요. 환경운동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동물을 보호하고 종을 늘리고, 유전자 연구를 한다면 실패하고 말아요. 철저하게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동물이 사는 방식을 존중해야 해요.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원죄’가 있어요. 하지만 나는 ‘무한경쟁’이라는 말이 싫어요. 종국에는 하나만 남긴다는 것이 아니에요?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환경’을 중심에 둬야 해요.
▽최〓‘환경’보다는 ‘생태’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생태학이라는 학문은 서양에서 시작된 자연과학의 한 분야이지만 사상적으로 다분히 동양적 성격을 띠고 있어요. 오랫동안 서양에서는 경쟁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어요.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미국의 한 여류 생태학자가 생태학 분야에서 남성 생태학자와 여성 생태학자가 연구하는 주제를 조사한 적이 있어요. 그 결과를 보면 남성 생태학자의 대부분이 ‘경쟁’을 연구하고, 여성 생태학자들은 ‘협동’을 연구했어요. 그 때는 자연에서의 ‘경쟁’이 연구의 주류였지만, 한 20여 년 전부터는 ‘협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흔히 지구의 지배자가 동물이라고 생각하지만, 무게로 치면 지구상에서 식물이 제일 막강한 존재고 숫자로 따지면 곤충이 가장 성공한 생물이에요. 이들이 자연계에서 성공한 이유는 ‘공생’했기 때문이지요. 식물과 곤충이 서로 협력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싸워서 이겨야 하는 줄 알지만 큰 성공은 ‘손잡은 친구들’이 했어요. 이를 깨달으면서 이제 ‘생태학’은 새로운 길을 걷고 있어요.
▽박〓중요한 것은 ‘생명의 평등’이라는 이데올로기예요. 아주 옛날, 샤머니즘의 시대는 공간이 우주적이었어요. 그러다가 불교가 우세하면서 공간이 좁아지더니 유교의 시대가 오면서 인간주의가 전면에 드러났지요. 현재 득세하는 자본주의는 물질이 중심이지만, 지금 발 딛는 자리에서 우주의 질서를 통해 생태를 봐야 해요.
▽최〓요즘 두 대선 후보를 보면 어째서 환경문제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국립자연사박물관, 국립생태연구소 하나 없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예요. 선진국에서는 환경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후보가 국가의 수반이 되는 예는 없어요.
▽박〓한국의 환경운동도 문제가 많아요. 선전하고 떠들고 플래카드 드는 것만이 운동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 사정에 너무 눈이 어두워요. 전략과 전술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전략과 전술이 앞서가서는 안 돼요. 전략과 전술은 필요할 때 갖다 쓰는 것인데 전략과 전술이 앞서면 사람들이 안 믿어요. 문화운동, 시민운동, 생태운동은 끝없이 투자하고 희생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풀 하나 뽑고 종 하나 살리고, 새가 지나가다 먹을 수 있는 열매나무 심는 일이에요.
▽최〓8월 행사에 오는 이들이 대개 생태학자들인데, 이들은 역시 과학자이기 때문에 재고 분석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전에는 전문 생태학자들을 위한 강의들이 열리고 저녁시간에는 생태학자는 물론, 철학자, 경제학자, 교육학자, 그리고 문학가들이 한데 모여 인간과 지구 생태의 문제를 보다 학제적으로 분석할 계획이에요.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박경리 선생님을 모시고 문학에서 본 생태 감수성에 대해서도 말씀을 들을 예정입니다. 생태학이 이 모든 학문분야들을 아울러 종합학문으로 거듭나야 우리 인류를 이 엄청난 환경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박〓요즘은 종교나 철학도 모두 빈사상태예요. 더 이상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지요. 현재까지의 철학, 과학 등 모든 것이 다 머문 것을 대상으로 삼지만 생명은 머물지 않아요. 학문은 합리화를 무기로 해서 적당한 데서 자르고 틀을 짓지만 총체성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아예 초입에서 잘라서 그 뒤의 무궁한 것을 놓치는 것이에요. 사람들도 의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으니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최〓사람들의 생각은 분명히 변하고 있지만 그 변화가 너무 느려서 미처 기다리지 못하고 자연이 다 사라질까 걱정입니다. 1980년대 초반에 미국의 저명한 생태학자가 “더 이상 논문을 쓰지 않겠다. 먼저 숲을 살려야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어요. 그가 코스타리카에서 연구를 하는 동안 주변의 숲이 계속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의 용기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어요. 이전에는 대부분의 생태학자들은 깨끗하게 정돈된 생태계만을 연구했었지만, 그의 선언 뒤 많은 생태학자가 그의 길을 따랐어요.
저는 종종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생태학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나서 운동을 해야한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자연에 대해 점점 더 알게 되면 저절로 자연을 사랑하게 되고 자연과 함께 살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지금 젊은 친구들을 20년 정도만 열심히 가르치면 그들이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되었을 때 환경은 저절로 보호될 겁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탓할 지 모르지만 사실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방법이지요.
▽박〓알면 멀리 내다보게 돼요. 멀리 보면 멀리 가지요. 인간들이 아등바등하며 소비하는 것들은 거의 다 낭비예요. 그게 다 인생과 관계가 없는데 그것을 위해 살고 있으니 다 인생의 낭비지요. 토지문화관 뒤에 ‘오봉’이 있는데 한 가족 같아요. 아버지와 인자한 엄마, ‘새처운(귀엽고 새침한)’ 딸도 있구요. 그래서 매일 산에게 “참 다복하십니다”하고 인사하며 지내지요.
정리〓김형찬 기자 khc@donga.com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