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눈]장영수/축구에 밀린 참정권

  • 입력 2002년 6월 16일 22시 46분


월드컵 축구경기의 열기! 근래 이처럼 우리 국민 전체를 하나로 묶어 주었던 축제가 있을까. 특히 우리 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가 한산해지고, 학교와 회사가 수업과 근무시간을 단축하고, 경기장과 대형전광판 앞에는 붉은 티셔츠 일색이다. 어린이도 어른도 구호를 외치며, 구호에 맞춰 박수까지 치고 있다.

각종 게이트에 의해 우울했던 국민이 이번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보여준 대표팀의 선전을 계기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숙된 응원 문화와 시민의식 등에서 보여주듯이 애국심과 공공의식까지 고무시키고 있으니, 이번 월드컵은 기대 이상의 큰 효과를 낳고 있는 국가적 축제로 승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투표는 민주주의 기초인데…▼

하지만 그 이면에 우리가 그동안 간과해온, 하지만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문제들도 적지 않다.

며칠 전의 지방선거를 돌아보자.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행해지는 전초전의 성격을 갖고 있기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각 정당이 총력을 기울여서 민심을 얻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투표율은 50%에도 미달하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그 결과 선거를 통해 확인되는 민심의 의미도 감소하게 되었다.

당선자들조차도 자신에 대한 지역 주민의 지지가 과연 어느 정도 확실한 것인지를 장담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으며, 선거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의사를 통해 한편으로는 선출된 후보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후보자들 내지 그들을 공천한 정당에 대해 통제를 가하는 선거의 민주적 기능도 현저하게 약화된 것이다.

이처럼 선거의 의미가 감퇴된다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기초가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5년전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관철시켰던 6월 항쟁. 그 역사의 주체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주역을 맡고 있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국민의 선거에 대한 관심이 약해진 것일까.

아무리 지방선거라고 하지만, 적어도 광역단체장의 의미와 비중 및 그에 대한 관심이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인데도 이처럼 투표율이 낮아진 것은 왜일까.

물론 그동안 정치권에서 보여준 여러 행태가 국민을 식상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다.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어느 쪽에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양비론, 그로부터 비롯된 정치와 선거에 대한 회의…. 이런 모든 것이 국민의 정치 및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그랬던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국민이 비장한 각오로 독재와의 투쟁에 나섰던 15년 전, 22년 전, 또는 42년 전 당시에는 정치와 선거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오늘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선거와 같은 저조한 투표율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월드컵의 열기가 투표율 하락에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비록 선거 당일 우리 대표팀의 경기는 없었지만, 이미 월드컵 마니아가 되어 버린 많은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경기장으로, 전광판 앞으로, 혹은 TV 앞으로 몰려다니느라 선거를 소홀히 하는 모습은 이미 예측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 축구경기에 취해 있기 때문에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미래의 축제를 준비하자▼

축제는 즐거운 것이다. 또한 축제는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러나 오로지 축제에만 빠져서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면, 그 축제는 마약이 되어 버린다. 축제기간 흥을 돋우는 것은 좋지만, 밥 굶고 잠 안자며 축제만을 즐길 수는 없다.

축제는 재충전의 의미를 갖는다. 평소에 자기 삶에 충실했던 사람들만이 축제를 누릴 자격이 있으며, 축제 후에는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 자기 직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제 와서 이미 지나간 지방선거에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축제를 마친 후를 서서히 준비해야 한다.

긴 축제를 마친 후 일상에의 복귀는 수월할 것인가. 만일 국민이 또다른 축제만을 찾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꺼리게 되면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삶, 우리나라의 미래는 축제가 아닌 일상 속에 있다. 충실한 삶을 보낸 후에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축제, 보다 멋진 축제를 기대할 자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장영수/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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