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는 책]역사와 문학의 포옹 '왕 여인의 죽음'

  • 입력 2002년 6월 14일 18시 46분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 시절 중국이나 일본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그것은 막연한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 우리네 삶을 좀더 넓고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에 관한 소설을 쓸 때는 레이 황의 ‘1587 아무 일도 없었던 해’(가지않은 길)를 곁에 두고 읽었다. 덕분에 명나라의 시선으로 이 전쟁을 새롭게 조망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여성의 삶에 집중하는 요즘은 조너선 D. 스펜스의 ‘왕 여인의 죽음’(이산)을 반복해서 읽고 있다.

17세기말 탄청현에서 살해당한 왕 여인에게 다가가는 스펜스의 걸음은 느려 터졌다. 다양한 자료를 통해 탄청현의 비참한 과거를 훑고 토지를 중심으로 경제 사정을 살피며 가족 제도를 분석한다. 대단원이 눈앞인데도 왕 여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책이 소설이었다면 벌써 던져버렸으리라.

역사와 소설은 이토록 다른 것인가. 지루한 나열에 싫증날 즈음, 갑자기 글씨체가 달라지고 문장이 바뀐다. 건조하고 딱딱한 분위기 대신 현재형의 단문이 왕 여인의 욕망과 환상을 그려나간다. 이건 소설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일곱 면을 채운 아름다운 문장들이 대부분 왕 여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푸쑹링의 ‘요재지이’(범우사)에서 직접 인용되었다는 점이다.

낯선 이의 책에서 같은 욕망을 읽을 때면 숨이 턱 막히고 삶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내게는 지난 10년 간 역사소설을 쓰면서 아무에게도 고백하지 않은 꿈이 하나 있다. 주인공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그 자체로 말하며 생각하기. 주인공의 문집과 주변 인물의 시문에 집착한 것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들러붙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연구를 해도 주인공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인물을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 그 어두운 낙담의 자리로 이런 구상이 파고든다. 내가 문장을 만들 것이 아니라 차라리 그 인물이 만든 문장으로 소설을 짓는 것은 어떨까. 조금 더 고백하자면, 16세기 시문에서 단어와 문장을 발췌한 역사소설을 탈고한 후 가슴 뿌듯하던 봄날 저녁,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소설적 상상의 날개를 편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아찔함과 함께 존경의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미시사의 붐이 일면서 문학과 역사의 거리가 한층 좁혀지는 요즈음이지만, 그 둘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한 번도 영향을 주고받은 적이 없는 미국의 탁월한 역사학자와 한국의 어리석은 역사소설가가 24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욕망을 품으며 비슷한 글쓰기를 하였다면, 그것이 바로 문학과 역사가 행복하게 포옹할 수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이 즐거운 망상을 위해 오늘도 나는 왕 여인의 죽음을 기꺼이 더듬는다.

김탁환(소설가·건양대교수·tagtag@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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