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지구촌 표정]폴란드 언론 “한국을 16강 제물로”

  • 입력 2002년 6월 3일 18시 36분


○…한국과의 격돌을 하루 앞둔 3일 폴란드는 한국을 첫 제물로 삼아 16강에 진출해야 한다는 결의에 들끓었다.

폴란드 언론들은 서울발 월드컵 기사로 신문을 도배하다시피하며 “한수 아래인 한국에 승리를 거둔 뒤 강호 포르투갈과의 경기에 임해야 한다”고 전했다. 언론들은 골게터인 에마누엘 올리사데베 선수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선수 대부분이 유럽의 1부 리그에서 뛰는 폴란드가 한국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이 앞선다”고 소개했다.

특히 수비수인 토마시 하이토 선수는 한국과 프랑스의 평가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차피 (한국이) 패한 경기다. 진 경기에 감명받을 게 뭐 있느냐”고 일축. 폴란드 축구협회 보니엑 부회장도 “평가전과 월드컵 본선 경기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느긋해했다. 예지 엥겔 감독만이 “한국은 이 첫 경기를 위해 4년을 준비해왔다”며 감독다운 신중함을 보였다.

폴란드 회사들은 4일 오후 1시반부터 중계되는 대한국전 이후에는 이기든 지든 정상 근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오전 근무로 끝내거나 아예 휴무키로 한 곳도 많다. 한 여론조사에서 폴란드인의 75%가 한국과의 경기를 반드시 보겠다고 응답했다.

바르샤바 중심에 자리한 문화과학궁전(37층) 측은 3일 건물 내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 외교사절들에게 초청장을 보냈으며 한국대사관 측도 바르샤바 교외의 대사관저에 대형 TV를 설치, 교민들과의 관람 준비를 끝냈다.

대사관 측은 한-폴란드 전에서 폴란드가 패배할 경우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폴란드 훌리건의 난동을 우려했다. 최근 바르샤바에서 축구 경기 후 흥분한 훌리건들이 바르샤바 구 시가지의 상점가를 파괴, 대량의 재산피해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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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풍이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50주년 기념축제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현지언론들이 보도했다. 4일에 걸친 성대한 여왕 즉위 50주년 기념행사가 1일 밤 시작됐지만 영국 국민들은 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집이나 맥주집에서 TV로 잉글랜드-스웨덴전을 지켜봤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버킹엄궁에서는 화재가 발생, 수백명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

여왕은 축구 경기가 벌어진 시간에 경기를 보지 않고 윈저성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했다.

영국 성공회는 축구팬들을 위해 예배시간을 조정하도록 권고했다. 조지 캐리 추기경은 “예배가 가장 중요하지만 월드컵 경기는 4년마다 돌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융통성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몇몇 성공회 성직자들은 축구와 관련한 특별 찬송을 작곡하고 기도문까지 쓰는 등 분위기를 달구었다.

○…월드컵 열기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마저 일시적으로 덮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예루살렘 인근 아부 고슈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아랍계 야와트 이브라힘 사장(37)은 월드컵 기간 중 레스토랑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 아랍인과 이스라엘인 가릴 것 없이 함께 경기를 시청하도록 했다. 신문은 이스라엘 정부 관료와 팔레스타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2일 잉글랜드-스웨덴전을 함께 시청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자국에 호의적인 잉글랜드팀을 응원한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잉글랜드팀을 응원하기를 꺼려 축구 경기 관전에서도 ‘정치적 견해차’를 좁힐 수는 없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중국 보안당국은 국가 대표팀의 월드컵 데뷔전이 톈안먼(天安門) 사태 13주기인 4일 열림에 따라 집단 소요를 우려, 반정부 인사들을 집중단속하고 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광저우(廣州)의 한 반정부인사는 2일 희생자를 위한 촛불 전야제 허가를 받으려다 거부당한 뒤 경찰에 7시간 동안 구금됐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2명의 반정부인사들도 경찰에 의해 호텔에 억류됐다. 베이징에서는 최소 20명의 반정부인사들이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에콰도르는 축제 분위기로 전역이 들썩이고 있다. 일간지 ‘호이’는 에콰도르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기 위해 발매된 티셔츠와 모자, 배지 등의 판매가 급증했으며 새벽 무렵까지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느라 시내 전력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3일 열린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에콰도르인 3000여명이 일본을 찾았다고 일본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은 밝혔다. 삿포로 경기장 주변에는 경기시작 10시간 전부터 수많은 에콰도르 응원단이 진을 치며 선전을 기원했다.

○…브라질 현지 언론들은 터키와의 예선 1차전을 앞두고 손쉬운 승리를 점치는 분위기다. 일부 언론들은 이탈리아와 결승에서 만나게 될 가능성을 미리 언급하는 등 중국 및 코스타리카 등 C조 소속 국가들을 가볍게 물리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98년 월드컵 우승팀 프랑스를 꺾은 세네갈의 사례를 들며 이변을 경계하기도.

○…반세기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터키는 3일 터키팀이 전반전에 브라질에 1-0으로 앞서 가자 전 국민이 열광했으나 후반 브라질에 동점골과 역전골을 잇달아 허용하자 마치 나락으로 떨어진 듯 침통한 분위기. 앙카라의 2000여명의 고교생들은 학교측이 TV중계를 볼 수 있도록 수업까지 휴강해주었는데 팀이 지자 크게 낙담.

6·25전쟁에 참전했던 퇴역군인들을 중심으로 한국과 터키와의 오랜 인연을 되새겼던 터키인들은 한국인 국제심판 김영주씨의 페널티킥 판정에 대해서 할 말을 잃었다.

한편 독일 베를린 중심가에서 TV중계를 보던 400여명의 터키 응원단과 브라질 응원단이 격렬한 응원 끝에 충돌했으나 즉시 출동한 경찰의 제지로 큰 부상자는 없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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