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월드컵 부끄러운 의장없는 국회

  • 입력 2002년 5월 30일 18시 37분


법을 만드는 국회가 걸핏하면 법을 어기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지칠 대로 지쳤다. 어제 16대 국회 후반기가 시작됐지만 의사당은 기능마비 상태에 들어갔다. 국회의장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다투는 바람에 원 구성 법정시한을 넘겼고 마침내 의장단도 상임위도 없는 상황을 맞았다.

더욱이 지방선거에 출마한 국회의원 4명의 사퇴처리가 안 돼 이들이 의원 신분으로 선거전에 나서는 혼란한 상황까지 빚어졌으니 이런 정치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지방선거 후 이로 인한 후유증이 걱정된다.

올 2월 개정된 국회법은 국회의장이 정당을 떠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립적인 위치에서 국회를 운영하라는 취지다. 국회의장을 서로 자기 당 몫이라고 우기는 것은 이런 국회법 정신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치개혁 한다며 국회법을 개정해 놓고 몇 달도 안 돼 비켜가려는 것은 새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저버리는 것이다.

국회 공백으로 민생현안이 뒷전으로 밀린 것도 문제지만 당장 월드컵 개최국의 이미지에 흠집을 낸 정치현실은 국제적 망신거리이다.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할 입법부 대표가 없는 데다 우리나라에 온 국빈을 맞는 의전에도 차질이 생겼다. 외국 손님을 모셔놓고 우리 정치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 부끄럽다. 월드컵 대회관리나 축구실력보다 정치가 더 뒤진 느낌이다.

이런 판국에도 두 당의 기 싸움은 끝이 안 보인다. 한나라당은 의장후보까지 선출했고, 민주당은 시한을 넘겨도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어떤 명분을 갖다 붙여도 대통령선거를 앞둔 힘겨루기고, 당리당략(黨利黨略)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월드컵 기간 중 근로자들의 파업자제를 요청해 놓고 정작 의원들은 자당(自黨)이기주의에 빠져 할 일을 팽개쳐 놓고 있으니 할 말을 잃게 된다.

더 이상 원 구성을 늦춰서는 안 된다. 각당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의원들이 자유스럽게 적임자를 선출하는 국회의장 자유투표를 당장 실시하라. 그것이 의장의 무당적(無黨籍)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국회는 특정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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