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2…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12)

  • 입력 2002년 5월 1일 18시 27분


<지금까지의 줄거리>

이우철의 혼이 달리고 있다. 좌익운동에 가담하여 살해당한 남동생 우근을 생각하고,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자문하면서. 손녀딸인 유미리가 굿을 벌여 우철을 불러낸다. 우철은 무당의 입을 빌어 말한다. 그 자리에 같이 한, 첩이 낳은 아들 신철에게도 사과한다. 그 때 우철의 첫 부인인 인혜의 혼이 날아든다.

무당은 불안한 듯이 방안을 둘러보면서 오른 손으로 왼 손 약지에 낀 반지를 빙빙 돌리는 듯한 동작을 하지만, 반지를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미리 미옥(美玉)씨와 신자(信子)씨는 안 왔어요.

무당3 그럼 난 누구한테 얘기한단 말이가?

유미리 저한테 얘기하세요.

무당3 너는 누구 자식이고?

유미리 저는 이우철과 안정희 사이에서 태어난 신희의 딸이예요.

무당3 안정희! 그 여자는 꼴도 보기 싫다! 나를 호적에서 파내고 자기를 호적에 올린 여자! 너도 안정희의 자식이가!

이신철 저의 어머니는 김미영입니다.

무당3 김미영! 기억하고 말고 OK카페의 댄서였지 젖가슴을 쑥 내밀고 허리를 비비 꼬면서 우리 남편을 꼬신 개같은 년!

이신철 어머니는 머리는 좋지 않아도 선량한 사람입니다. 어머니가 유혹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유혹한 겁니다.

무당3 그 사람이 달리면 여자들이 줄줄이 따라다녔어 안정희하고 김미영뿐만이 아니야 열 손가락 다 꼽아도 모자랄만큼 여자들이 많았다

헤어지라고 닥달을 하면 헤어진다고 약속이야 하지 하지만 몰래 만나고 다녔어 그래서 따지고 들었더니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 나 몰래 안정희는 아들을 둘이나 낳았고 김미영도 아들을 낳았지 그게 너지? 나는 호적에서 떨려 났는데도 두 딸과 함께 기다렸다 증오가 바로 기다림이라고 생각할 만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몇 년이고 몇 년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 집 앞은 지나가지도 않았다 나는 집을 나왔다 열세 살하고 일곱 살 짜리 딸을 내버려두고 나는 그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그 사람의 딸들은 내한테 버림받고 신태가 살아 있었다면 우리가 헤어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이고 귀여운 내새끼! 신태는 활달하고 머리가 좋은 애였다 동네 아이들하고 싸움을 해서 시퍼렇게 멍이 들어 들어오곤 했지

그 사람은 신태를 자기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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