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기자의 반집&한집]잘나가던 안조영 덜컥수 "아, 반집"

  • 입력 2002년 4월 28일 17시 28분


《22일 열린 37기 패왕전 도전 1국. 생애 두번째로 타이틀 도전하는 안조영 7단(23)과 이창호 9단이 마주 앉았다. 안 7단은 99년 최고위전에서 이 9단에게 도전했으나 0대 2로 패했다. ‘이 9단의 벽을 넘기에는 아직 덜 여물었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올해 안 7단은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서자마자 14연승 행진을 했고 이 바둑을 두기 전까지 21승 7패로 다승 3위. 안 7단이 무언가 보여줄 지 모른다는 기대 속에 오전 10시 대국이 시작됐다.》

둘 다 끝내기가 특기여서 잔 승부로 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오후 8시 무렵. 이제 두세집 끝내기 정도만 남았다. 보통이라면 이쯤 승패를 확연히 알 수 있다. 프로기사라면 반집을 다투는 바둑이라도 정확한 수순을 읽어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 반집짜리 패가 남아 있는데다 두 대국자 모두 초읽기에 몰려 있어 아직 승부의 향방을 점치기 힘든 상태.

검토실에서도 흑을 든 이 9단이 반집 정도 남는 것 같다고 추측만 할 뿐 정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었다.

“반집 짜리 패가 승부인 것 같은데…, 팻감은 어떻게 되지?”

“팻감이라면 당연히 흑이 많지.”

“아니야, (흑진 속의 한 곳을 가리키며) 백이 이 쪽을 끊는 것이 팻감이 된다면 백이 많을 수도 있어.”

그 쪽을 끊는 것이 수가 되는지 안되는지는 참고도 수십개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

검토를 하던 윤성현 7단은 답답해하는 기자에게 “‘한국 프로기사의 문제점-한두집 끝내기가 남았는데도 승부를 예측 못할 정도로 실력이 형편없다’는 특집 기사를 한 번 쓰세요”하고 농담을 던진다.

이 바둑은 종반 무렵 안 7단이 승세를 굳힐 찬스가 있었다. 장면도 백 1로 붙인 것은 이곳을 선수로 정리하겠다는 뜻. 흑 4까지는 당연한 수순이다. 검토실에선 이제 ‘가’를 선수하고 중앙 쪽으로 손을 돌리면 백이 유리하다고 진단하고 있었다. 그 차이는 1집반 정도. 변화 무쌍한 바둑이라면 1집반 차이도 안심할 수 없지만 이 바둑의 흐름상 1집반은 뛰어넘을 수 없는 차이라는 것.

하지만 초읽기에 몰려 덜컥 놓여진 백 5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했다. 흑이 6으로 꽉 잇자 패맛 때문에 7로 가일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바쁜 순간에 후수 3집짜리 끝내기에 발목이 잡힌 것. 선수를 잡은 백이 중앙 삭감에 나서자 형세는 반집으로 좁혀졌다.

마지막 패가 변수라던 검토실의 예상과는 달리 바둑은 패 없이 끝났다. 흑의 반집승. 검토실 기사들이 우르르 대국실로 몰려갔다. ‘마지막 패’를 할 수순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안 7단의 말을 놓고 기사들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의 문답을 지켜보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쳐내던 이 9단의 표정에는 ‘그래도 아직은…’이라는 안도가 드러나 있었다.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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