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그 때 그이야기]제9회 멕시코대회<하>

  • 입력 2002년 4월 28일 17시 16분


아즈텍 경기장에서 열린 멕시코월드컵 개회식.
아즈텍 경기장에서 열린 멕시코월드컵 개회식.
제9회 멕시코월드컵을 통해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된 나라는 엘살바도르였다. 그러나 엘살바도르가 기억되는 것은 축구때문이 아니었다.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며 만들어진 월드컵대회가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무대가 바로 멕시코월드컵이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벌인 ‘축구 전쟁’이 멕시코월드컵 예선 기간 동안 일어난 것.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홈 앤드 어웨이의 월드컵 2차 예선전을 가졌다.

1969년 6월8일 온두라스의 테구시알파에서 열린 1차전은 1-0으로 온두라스가 승리했고, 일주일 후 벌어진 2차전은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에서 열려 엘살바도르가 3-0으로 이겼다. 이웃나라인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이전부터 서로간의 감정이 좋지 않았다. 엘살바도르가 이긴 뒤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원정 응원을 온 온두라스 축구 팬을 폭행했고, 이들은 만신창이로 트럭에 실려 추방당했다. 분노한 온두라스 국민은 엘살바도르 교민을 상대로 보복에 나섰다. 수십명이 살해당하는 폭동 끝에 23일 양국은 국교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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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골득실차로 승부를 가리지 않아 1승1패가 된 양국은 멕시코에서 최종전을 가졌다. 연장 끝에 3-2로 엘살바도르의 승리.

그러나 승부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엘살바도르는 7월13일 온두라스에 선전 포고와 함께 침공을 했고 전쟁이 시작됐다. 온두라스는 즉각 반격에 나섰으나 엘살바도르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7월18일 2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온두라스의 굴욕적인 휴전으로 유명한 ‘축구 전쟁’은 막을 내렸다. 엘살바도르는 아이티까지 누르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엘살바도르는 월드컵 본선에서도 피를 부르게 된다. 엘살바도르와 멕시코의 예선 두 번째 경기. 엘살바도르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멕시코는 엘살바도르 진영을 유린했다. 4-0 멕시코 승리.

이때 관중석에서 느닷없는 총성이 들렸다. 저마다 ‘심판의 편파판정’과 ‘기량의 우위’를 주장하는 멕시코 축구팬끼리의 말다툼이 결국 총격 사건으로 번진 것. 경기가 벌어지는 도중 일어난 살인 사건도 역시 월드컵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축구로 볼 때 엘살바도르는 월드컵에서 그다지 큰 발자취를 남긴 팀은 아니었지만, 멕시코월드컵은 엘살바도르가 국가의 이름을 알린 계기가 됐다.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 그점은 분명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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