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응격/로마제국의 지방자치

  • 입력 2002년 4월 7일 18시 49분


이탈리아 로마를 제대로 살펴본 사람이라면 한 가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2000년 전 고대 로마의 유적지와 웅장한 건축물을 보며 아무리 감탄을 하더라도 한 가지는 끝내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대 세계의 수도인 로마에 광대한 제국을 통치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관청 건물이 들어선 관청가가 없다는 사실, 바로 그것이다. 고대 로마에 관청가가 없었다는 것은 곧 독립된 관료조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그렇다면 로마인들은 어떻게 그 넓은 제국을 1000년 가까이 통치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이 지방자치다. 고대 로마인은 이탈리아 반도만을 통치했던 기원전에도 이미 수백년간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을 병존시켰다. 중앙이 할 일과 지방이 할 일을 분리한 로마의 정책은 광대한 식민지를 영유하게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 치세 이후의 제국시대에도 이어졌다. 중앙은 국토방위, 세제정비,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같은 국가적 사업을 맡고, 나머지 지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지방이 담당했다.

▷로마시대 지방 도시나 농촌의 지방자치는 ‘무니카피아’라는 이름의 지방의회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중앙 원로원의 축소판인 지방의회는 투표권을 가진 주민의 투표로 구성된다. 폼페이 유적에 남아 있는 벽보는 로마시대 지방에서 선거운동이 활발했다는 흥미로운 사실까지 전해준다. 로마 제국의 지방이나 식민지들이 지방자치권을 부여받는 조건이 있기는 했다. 바로 지방분권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 차별 없이 지방자치권을 부여받는 조건이었다.

▷로마제국의 수많은 지방들이 지방자치를 위한 엄청난 재원을 마련한 비결은 무엇일까. 당시에는 물론 지방세가 없었다. 지방들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나 건물의 임대료, 상수도 요금으로는 턱없이 재원이 부족했다. 모자라는 지방 재정의 대부분을 충당한 것이 바로 부유한 시민계층의 기부금이었다. 고귀한 시민의 책무를 뜻하는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로마시대에는 지방에 대한 기부행위와 중앙에 대한 병역의무를 의미했다. 로마제국의 지방자치는 지방선거의 해를 맞이한 우리에게도 교훈을 준다. 지방자치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지방분권에 대한 확고한 정치적 의지, 지방재원의 확충, 주민참여, ‘자율과 책임’을 축으로 한 시민의식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박응격 객원논설위원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장

parkek@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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