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번역은 식민화 도구인가 '번역과 제국'

  • 입력 2002년 3월 29일 17시 21분


번역과 제국/더글러스 로빈슨 지음 정혜욱 옮김/215쪽 1만6000원 동문선

일반 번역물에 비해 번역 이론서는 가물에 콩 나듯 한다. 그런 까닭에 더글러스 로빈슨의 책, 더구나 ‘번역된’ 번역 이론서를 접하게 된 것은 기쁨이었다. 그리고 책제목이 ‘번역’과 ‘제국’으로 연결된 것을 보자마자 단숨에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왜냐하면 제국이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힘이 막강한 한 집단이 다른 많은 집단을 점령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권력을 확장하고 유지하는 체제인데, 이런 제국과 번역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로빈슨은 먼저 1980년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문화인류학에서 생겨난 포스트 콜로니얼(Postcolonial), 즉 후기 식민주의적 번역 이론들에 주목한다. 후기 식민주의적이란 (식민주의 시기를 포함할 때도 있지만) 제국으로부터 독립 후 현재까지 제국주의적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후기 식민주의적 번역이론에 따르면, 번역은 제국과 관련해 세 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첫째로 식민주의 시기에는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을 교육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외적이며 강압적인 제도, 둘째로 독립 후에도 지배자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온유한 수단, 셋째로 탈식민화를 촉진시키는 채널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번역은 식민화의 도구인가, 아니면 탈식민화를 앞당기는 촉진제인가? 로빈슨은 번역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장하면서 양측으로 갈라서는 이론들을 소개한다. 전자에는 번역을 제국의 철저한 도구로 이해하고 번역의 악마성을 주장한 E 체이피츠가 있고, 후자에는 정복당했던 ‘원주민’의 주체성을 되찾기 위한 방식으로 ‘재번역’을 주장한 T 니란자나, ‘오역’을 역설한 V 라파엘, 그리고 문화적 언어적 ‘잡종교배’ 상태를 잘 활용하자는 S 메헤레즈가 있다.

로빈슨은 이런 양극 현상으로 인해 이 이론가들이 원주민주의자와 엘리트주의자로 재분류된다고 지적한다. 즉, 이 후기 식민주의적 이론들 사이에도 식민지의 경향이 생존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부제 ‘포스트식민주의 이론 해설’의 원제를 찾아보니 ‘Postcolonial Theories Explained’였다. 즉, Postcolonial이라는 한 단어를 쪼개어 ‘Post’는 영어의 한국식 발음으로 ‘colonial’은 한국어로 번역한 뒤, 다시 본래 단어처럼 합쳐 놓아 ‘포스트식민주의’가 됐다. 역자 후기에서 이에 대한 해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Poststructuralism’은 왜 ‘후기 구조주의’(p.194)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번역은 식민화를 위한 도구만도, 탈식민화를 위한 수단만도 아니며 자국 언어의 아름다움과 특이성을 살리는 주체적 작업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로빈슨의 번역에 관한 저서는 이 외에도 다섯 권이 더 있다. 이 책을 내놓은 출판사와 번역자가 이 책들을 계속 번역 출간할 계획이라고 하니 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김다은 소설가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

daeun@chugy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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