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태의 월가리포트]투자자는 ‘심판’

  • 입력 2002년 3월 4일 17시 21분


보통 ‘심판자’라고 하면 신화에 나오는 저울을 든 여인상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이 정의의 여신이 바로 ‘아스트라에아(Astraea)’인데, 그녀가 들고 있는 천칭(libra)은 인간의 선과 악을 재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판정 시비로 얼룩진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은 게임에 있어서의 심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주식시장’이라는 머니게임에서 심판은 아마도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 자신일 것이다. 투자자들은 기본적으로 선수로 경기에 참여했지만 본인 의도와 관계없이 심판 역할도 부지불식간에 하고 있다.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같은 시장 주변의 조직들은 게임의 룰을 정하고 게임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역할을 하지만, 회사 가치를 주가 등락으로 공정하게 반영하는 심판은 아마도 투자자 자신일 것이다.

미국증시를 보자. 지난달 20일 전후엔 투자자들은 이 저울의 한 쪽(악재 쪽)에 ‘기업 회계관행’을, 또 다른 한 쪽(호재 쪽)에는 ‘경기회복’을 올려놓고 그 무게를 비교했다. 물론 저울은 ‘기업 회계관행’이라는 악재로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발표된 기대 이상의 ‘1월 기존주택 판매지표’의 발표를 계기로 이날 이후로 ‘경기회복’이라는 호재가 점점 무게를 얻기 시작했다. 그동안 하락했던 기술주들이 반등했고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전통주 중심의 다우존스지수도 1만선을 다시 넘어섰다.

‘경기회복’이라는 호재가 부각되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은 저울 한 쪽(악재 쪽)에 올려진 ‘기업 회계관행’을 내려놓고 대신 ‘금리’를 올려놓을 것이다. ‘경기회복’이라는 기대가 지나치면 금리 인상의 압력이 생기고 이는 주식시장에 악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달 27일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 경기에 대해 의회에서 증언했다. 경기는 전환점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급격한 회복보다는 점진적인 회복이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다분히 주식시장의 심판들이 가지고 있는 이 ‘저울’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경기 회복의 기대도 만족시키고 금리인상의 우려도 누그러뜨리려는 그린스펀 의장의 균형 감각은 이번 주 월가에서 투자자들이 들고 있는 이 저울에 의해 테스트될 것이다.

김남태 삼성증권 뉴욕법인 과장 knt@sams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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