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쉽게 풀어 쓴 주역 '주역해의'

  • 입력 2002년 1월 18일 18시 12분


주역해의(周易解義·전3권)/남동원 지음/429∼646쪽 각권 2만∼2만5000원 나남출판

근래 보기 드문 주역 해석의 역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춰볼 때 어두운 밤길에 밝은 불 하나를 만난 것 같아 반갑다. 이 저술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저자가 80평생을 오직 역리(易理·주역의 이치)를 밝히고자 정진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주역은 유교의 5경 중 하나로 중국 고전 가운데 가장 난해하여 접근이 어렵다. 사물의 본질과 변화하는 이치를 담은 주역은 본래 중국 고대의 점서였으나 공자가 주역 원문의 뜻을 밝히고자 10익(十翼)을 서술하면서 유교의 최고 경전으로 자리잡았다. 공자는 말년 주역에 심취해 “책을 묶은 끈이 세 번 끊어질(韋編三絶)” 정도로 읽고 또 읽은 다음 10익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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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는 예로부터 역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 국기가 태극기인 것도 역리를 모르면 이해할 수 없다. 한글 창제와 역리 또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역리를 모르면 해석할 수가 없다. 한국철학의 정상인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도 역리에서 도출된 것이다. 조선조는 물론 고려나 삼국시대에도 주역은 최상의 경전으로 대학의 교과서였을 뿐 아니라 과거시험의 주요 과목이기도 했다.

주역은 이처럼 우리의 정치 교육 윤리 도덕뿐 아니라 의약 천문 지리 점서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원리로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문화와 이토록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방의 위대한 철학사상을 우리 학계나 대중이 너무 등한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은 그 방대하고 난해한 역리를 탐구하면서 여러 학파 이론의 장단점을 잘 간추려 아주 평이하게, 누가 읽어도 이해가 되고 교양이 될 수 있도록 한글로 쉽게 풀어썼다. 송대 정주학(程朱學)의 의리사상을 중심으로 정이천(程伊川)의 ‘역전(易傳)’과 주자의 ‘주자본의(朱子本義)’를 서술하면서도 한대 및 당대의 역학과 청대의 ‘어찬주역절중(御纂周易折中)’ 중 독특한 견해인 괘상(卦象), 자의(字義), 착종(錯綜)을 인용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설괘전(說卦傳)’의 괘도(卦圖) 설명의 경우, 의리학파나 왕필(王弼)의 역주(易註)에서 부족한 점을 적절하게 보완 설명한 것은 탁견이라 하겠다.

저자는 역의 뛰어난 주석을 두루 참고했을 뿐 아니라 이경치경(以經治經·경으로 경을 이해한다)의 방법으로 역리를 풀어나간다. 주역을 설명하면서 ‘중용’과 ‘논어’ 등 다른 경전의 의미가 상통하는 경문을 원용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리고 술수적인 점술의 역을 경계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본래 점이라는 것은 신성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욕심으로 강행하여 요행을 바라고 점을 친다면 그 점은 맞지 않는다. 그런 예는 ‘춘추좌전’에서도 볼 수 있다. 주역은 군자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 소인의 부정한 행동을 경계한다. 자기 양심에 비추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은 ‘상제(上帝)에게 문복(問卜·점을 쳐서 물어보다)’할 일이 아니다. 크게 말해 생사나 부귀는 사람의 능력으로 좌우할 수 없는 것인 만큼 점을 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은 말하기를 “사리판단이 어려울 때 조용히 생각해 보라. 또 다시 생각해 보라. 그래도 판단이 안 되면 반드시 귀신이 와서 가르쳐 주나니 이는 귀신이 와서 계시함이 아니라 내 마음 스스로가 통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허욕과 편견을 버리고 성실하고 순박해지면 이는 곧 군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공자는 말년에 말하기를 “내 나이 70이 되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진리와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경지에 다다른다면 진정 성숙한 자유인의 경지라 하겠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현대인의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읽기를 권한다.

류승국 성균관대 명예교수·학술원회원·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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