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대통령의 건강

  • 입력 2002년 1월 15일 18시 00분


92년 1월 8일 일본을 방문 중이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만찬 석상에서 졸도했다. 일본 총리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있던 그가 갑자기 나무토막처럼 옆으로 쓰러지며 먹은 것을 토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생하게 전해졌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3분간의 충격’이었다. 당시 67세이던 부시 대통령은 졸도 사건으로 촉발된 건강에 대한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해 그해 11월 대선에서 ‘젊고 건강한’ 빌 클린턴에게 패하고 말았다. 72세가 된 97년 3750m 상공에서 고공낙하를 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일까. 이번에는 아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쓰러졌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것으로는 부족해 졸도까지 따라한 것은 아니겠지만 못 말리는 닮은꼴 부자가 됐다. 55세인 아들 부시 대통령의 졸도도 심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프레첼(맥주 안주로 애용되는 과자)이 목에 걸리는 바람에 불과 수초간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 주치의의 설명이다. 부시 대통령은 “어머니가 프레첼을 먹을 땐 잘 씹은 뒤 삼키라고 했다. 어머니 말씀은 잘 들어야 한다”는 농담을 남기고 다음날 예정대로 중서부 지방 방문 길에 나섰다.

▷미국은 대통령의 건강상태를 소상하게 공개한다. 이번에도 부시가 바닥에 쓰러지는 충격으로 왼쪽 뺨에 찰과상이 나고 아랫입술에 멍이 든 것을 보여주는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사진까지 공개했다.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미국의 정보기관은 외국 정상들의 건강에도 관심이 많아 외국 정상이 미국을 방문하면 심지어 배설물도 수거해 분석한다는 얘기까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전립선암으로 임기 마지막 몇 개월을 병석에 누워 보냈으면서도 함구령을 내렸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을 한 뒤 그의 건강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77세의 고령이기는 하지만 갈라지고 쉰 목소리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대통령을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봤을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청와대에서 아무런 발표가 없으니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를 기대하면서 대통령의 건강이 국정 처리에 지장을 주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던 어느 전직 대통령의 말이 오늘따라 일리가 있어 보인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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