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국내진출 日대금업체 '파죽지세'

  • 입력 2002년 1월 10일 17시 39분


10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일본계 대금업체인 A&O 인터내셔널 본점. 유리문을 열자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10여명의 여직원들이 미소를 지으며 고객을 맞는다. 부스 뒤에는 직원수칙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남성직원은 짙은색 양복 및 검정 양말 착용, 머리에 기름 바를 것, 연체고객에게도 항상 공손하게 말할 것…여성직원은 짙은 화장이나 매니큐어 금지.’

국내 사채업자의 사무실 풍경은 어떤가. 대체로 엘리베이터 없는 허름한 건물, 지저분하고 좁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 죄지은 사람처럼 돈을 빌려야 하는 분위기 아닌가.

A&O에서 주민등록등본과 주민등록증을 제출한 한 고객이 대출서류에 인적사항을 적었다. 여직원은 서류를 보고 고객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 신분을 확인한 뒤 현찰 250만원을 공손히 건넸다. 강남역 사거리 부근 학원에서 일하는 강사라고 밝힌 고객 김모씨(32)는 “신용카드 연체를 막기 위해 급전을 빌렸다”며 “사채업에서 연상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없고 대출결정이 빨라 이 곳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99년부터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대금업체가 사채시장을 급속히 잠식하고 있다. 한 업체의 고객이 연간 10만명을 넘어서고 이익이 1년 만에 10배로 불어나는가 하면 전국의 주요 도시로 지점을 넓혀가고 있다.

▽일본계 대금업체의 약진〓한국 상륙 제1호는 일본의 대금업체 후지기획이 100% 출자한 A&O 인터내셔널. 자본금 184억원과 일본에서 들여온 운영자금 600억원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현재 대출잔액이 1900억원에 이른다. 6만5000여명이 현재 이 회사에서 급전을 빌린 상태. 연간 대출고객은 10만명을 넘는다. 첫해 이익은 210억원, 작년은 550억원. 제주시를 포함해 전국의 29개 주요도시에 지점을 갖고 있다. 99년 10월 진출한 프로그레스는 대출잔액이 1500억원. 영업 첫해인 2000년 30억원에 이르렀던 이익이 작년엔 300억원으로 무려 10배나 불어났다. 직영점 20곳과 대리점 40개를 거느린 소비자금융회사로 급성장시킨 이덕수 사장(45)은 “첫발을 내디딘 것에 불과하다”며 “한국의 소비자금융이 워낙 취약해 상당 기간 급성장이 예상된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청남파이낸스, 파트너 크레디트, 여성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해피레이디 등 10여 군데의 일본계 대금업체들도 활발하게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토종 사채업자들은 일본업체의 거센 도전을 받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A&O 인터내셔널이 인천에 지점을 내자 일부 지역 사채업자들이 생활정보지에 이 회사의 광고를 받지 못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는 것. 국내 최대 사금융업체인 대호 크레디트 강석일 전무는 “영업력, 자금력, 서비스 등 국내 사채업자들이 일본업체보다 앞선 부분이 하나도 없다”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20조원 규모의 국내 사채시장을 일본계 업체가 싹쓸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비결은〓깨끗한 이미지, 신속한 대출, 낮은 조달금리, 선진적인 대출심사기법과 끈질긴 대출관리 등이 이들의 성공비결.

A&O의 박진욱 사장(55)은 “일본에서 10명이 파견 나와 하루에도 몇 번씩 친절교육을 하고 있다”며 “한국의 은행이나 보험회사 직원은 고압적인 자세가 몸에 배어 있어 경력직으로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속한 대출도 최대 장점. 중견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이모씨(29·여)는 “은행대출은 제출서류도 많고 꼬치꼬치 캐묻는 게 많아 귀찮고 국내 사채업자는 돈빌리기가 겁이 난다”며 “일본계 업체는 전화 한두 통으로 신분을 확인한 뒤 바로 돈을 내주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말했다. 월 8.1%의 고금리지만 국내 사채업체보다는 이자가 싸고 선이자나 수수료를 떼는 법도 없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일본계 대금업체인 A&Q 인터내셔널 본점.

이들 업체는 은행은 물론 사채업자도 외면하는 신용불량자에게도 선별해서 돈을 빌려준다. 일시적으로 돈이 부족해 신용불량으로 등록됐지만 신분이 확실한 사람에게는 빌려줘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일본에서의 경험. 고객의 60%가 직장인이며 40%가 자영업자. 이 중 신용불량자가 20%정도다.

끈질긴 대출관리도 성공요인. 신용금고 연합회 관계자는 “이들은 만기일 며칠 전에 전화해 만기일을 환기시키고 연체했을 때는 미리 확보해둔 친지 전화번호로도 끈질기게 연락을 하기 때문에 대손율이 5%수준으로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본계 대금업체를 이용한 후 다시는 찾지 않는 고객들도 많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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