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베토벤 심포니 9번

  • 입력 2001년 12월 27일 17시 58분


1824년 5월7일 빈의 한 극장. 연주가 끝나자 청중석은 환호와 박수갈채로 터져 버릴 듯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선 단 한 사람만이 그런 청중을 등뒤로 외면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젊은 여가수가 다가가 그를 돌려세웠다. ‘불멸의 작곡가’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청중을 본인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음악사에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로 남아 있는 이 장면은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의 초연(初演) 때 일이다. 당시 베토벤의 귀는 이미 아무 것도 들을 수 없는 상태였다.

▷연말에 자주 연주되는 클래식음악 곡으로는 헨델의 ‘메시아’와 함께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유명하다. 지난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연말 분위기에 이 작품의 웅장한 선율이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선율로만 친다면 연말에 들을 만한 음악은 이 외에도 많다. 작곡가의 생명이라 할 청각을 잃은 베토벤이 듣는 이의 영혼을 울리는 이런 곡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승리’의 상징이라는 점, 바로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연말에 이 곡을 애청하는 게 아닐까.

▷‘합창’은 교향곡 형식에 4명의 독창자와 대규모 혼성합창을 처음 도입한 곡이다. 성악 파트는 이 작품의 정점인 4악장에 나오는데 베토벤이 애독했다는 독일 시인 실러의 시 ‘환희의 노래’를 가사로 썼다. ‘품에 안겨라. 만민들이여! 온 세상에 이 키스를 주리. 환희여! 아름다운 주의 빛, 낙원에서 온 아가씨들이여. 환희여, 아름다운 주의 빛….’ 30대 초반부터 난청(難聽)과 생활고 등 온갖 시련을 겪어야 했던 만년의 작곡가는 세상에 대한 저주가 아니라 환희를 노래했다.

▷연말 분위기로 몸과 마음이 고단한 요즘, 음반으로나마 ‘합창’을 들어보자. 지난 한해 심기를 어지럽혔던 일들을 모두 접어버리고 새해의 정심(正心)을 가다듬는 일에 이 곡은 ‘탁월한 선택’이 될 수 있다. 선율의 바다에서 빠져나올 때쯤이면 한결 마음이 가뿐해져 있음을 느낄 것이다. 새해는 우리 사회에 불협화음이 조금 더 줄고, 이 곡의 제목처럼 모두 함께 합창하는 일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으련만.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