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일반석 증후군

  • 입력 2001년 12월 26일 17시 52분


전 세계 항공업계는 올해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탄식을 연발했다. 경기침체로 항공수요가 줄더니 느닷없이 피랍된 민간 여객기가 동원된 9·11 테러가 발생해 항공업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주에는 신발 바닥에 폭약을 감춘 테러범이 여객기 내에서 격투 끝에 체포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누가 “목숨을 걸고 비행기를 탄다”고 해도 웃어넘기지 못할 정도로 항공여행이 무서워졌다.

▷일반석 증후군(이코노미클래스 신드롬)도 올해 항공업계를 괴롭혔다. 장거리 항공여행을 하다 보면 다리 정맥의 피가 엉겨 생긴 혈전(血栓)이 폐혈관을 막아 호흡곤란과 심폐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생기는데 주로 좁은 일반석에 불편하게 앉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발생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한 달에 한 명꼴로 희생자가 발생한다는 통계가 나왔고 일본에서는 최근 8년간 나리타공항 이용 승객 중 25명이 숨졌다는 발표가 있었다. 지난주에도 싱가포르에서 런던으로 가던 20대 승객이 희생됐다.

▷놀랄 일이다. “다리를 구부린 채 오래 앉아있자니 조금 불편하군”이라며 일반석의 불편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니…. 영국 미국 호주 등의 피해자들은 발빠르게 항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법률회사는 항공사들이 최소한 5년 전부터 일반석 증후군의 위험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경고를 하지 않았다며 항공사를 몰아붙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서둘러 일반석 증후군의 원인규명과 대책마련을 위한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일반석 증후군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면 매시간 3∼4분 정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걷거나 스트레칭 체조를 하라고 충고한다. 레몬이 일반석 증후군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돈 때문에 자리 넓고 서비스 좋은 1등석을 이용할 수 없는 ‘일반석 인생들’. 부지런히 체조하고 레몬주스를 열심히 마시는 수밖에 없다. 과거 기내에서 고스톱을 치던 승객들은 이미 일반석 증후군의 위험을 알았던 것은 아닐까.

<방형남논설위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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