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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4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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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대학 교수들이 꼽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한자 성어가 그럴 듯하게 들린다. 주간 ‘교수신문’이 전국의 교수 70명에게 e메일을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3명(33%)이 ‘오리무중’이라고 적어냈다. 도대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날만 새면 드러나는 각종 정책 혼선과 잇단 비리 의혹, 그 속에서 국민은 뭐가 옳고 그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종합뉴스데이터베이스인 한국언론재단의 카인즈(KINDS)만 봐도 올 들어 24일까지 일간종합신문이 보도한 기사 중 ‘오리무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경우는 모두 251건이나 됐다. 그만큼 세상이 어지럽고 복잡했다는 증거다.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어서 정치도 경제도 아직은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 불가능이다. 각종 게이트에서 불거진 거액의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어디로 잠적했는지 오리무중이고, 연말 계속되는 총기사건의 범인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긴 아프가니스탄은 초토화됐지만 오사마 빈 라덴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오리무중’은 원래 ‘후한서(後漢書)’의 ‘장해전(張楷傳)’에 나오는 ‘오리무’에서 나온 말이다. 후한 안제(安帝) 시절 장해라는 뛰어난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여러 사람의 요청에도 결코 벼슬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누가 찾아오면 사방 오리에 걸쳐 안개를 일으켜 금방 숨어버리곤 했다고 한다. 내년에는 온 세상을 드리웠던 안개가 조금이라도 걷힐 수 있을까. 지금의 상황을 보면 오히려 ‘십리무’ ‘백리무’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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