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보신탕 ‘이전투구’

  • 입력 2001년 12월 10일 18시 14분


보신탕 소동이 점점 커지고 있다. 88년 서울올림픽 때의 리바이벌 판(版)이지만 이번에는 더 요란하다. 한국도 산전수전 다 겪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 되어 월드컵 축구대회를 치르는 나라 아닌가. 그래서 보신탕을 트집잡으면 올림픽 때처럼 죽어지낼 수만은 없다는 식이다. ‘한국만 개고기를 먹느냐’‘말고기 달팽이 먹는 너희는 뭐냐’고 거침없이 반박한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방송 진행자의 말다툼 이후에 보신탕 논란은 더 달아오른다. 왕년의 육체파 배우 바르도야말로 동물보호운동으로 늙은 스타가 되었다. 그녀는 개 편에 서서 한국 두들기기로 꽤 재미를 보아왔다. ‘개고기를 먹는 인간은 야만인’이라거나 ‘한국인은 거짓말쟁이다’고 서슴없이 쏘아붙인다.

▼화풀이식 대응 부적절▼

그 후 한국으로부터 항의성 e메일이 1000통이나 들어왔다고 공개한 것도 그녀다. 우리 쪽의 화풀이 대응을 그녀가 비즈니스에 역이용한 것이다. 그녀는 한국의 인터뷰에 막무가내로 대해도 ‘개 편’이 다수라고 확신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야 개는 가족의 일부 아닌가. 그리고 개고기를 먹는다면 다들 애완견 푸들이나 치와와를 잡아먹는 것으로 아니까.

그것이 바로 문화적 편견이요, 차이다. 서구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보신탕을 안 먹고 혐오하고 더러 개를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진돗개 삽살개를 사랑하는 모임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한다. 또 보신탕에 쓰이는 황구(黃狗)가 방안에서 키우는 애완용인줄 착각한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개고기를 먹고, 거개의 식당에서 개고기를 파는 것으로 오해한다. 특별한 식당에서 개고기라고 써붙이지도 못하고 사철탕 보신탕 간판을 걸고 파는 별난 음식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다.

편견이란 애당초 글러먹은 것이고 그럼에도 쉽게 고칠 수 없기 때문에 편견이다. 문화나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편견이 갈등과 분쟁을 낳고 심지어 전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만큼 골치 아픈 문제다. 그러므로 편견에 편승해서 일을 벌이는 바르도 식의 비즈니스도 수지가 맞고 설 땅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서구인의 편견을 향해 맞불을 놓고, 화풀이를 해대는 것이 현명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할말이야 많다. ‘동물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소를 칼로 찔러 죽이는 투우는 왜 못 말리느냐. 송아지 통구이는 뭐냐’고 말할 수 있다. 산 원숭이 골을 파먹는 짓, 거위의 간을 먹기 위해 인공으로 간경화를 일으켜 간을 부풀려 키우는 짓 같은 진짜 동물학대를 왜 못 말리느냐고 따질 수 있다. 옳은 말이고 당당한 대꾸다.

그러나 그렇게 화풀이해서, 당장 바르도가 몰아치는 야만스러운 식견족(食犬族) 이미지를 아주 떨쳐버릴 수 있을까. 인터넷 사이트의 동물보호단체 홈페이지들은 개를 매달아 잔혹하게 죽이는 사진, 털을 그슬려 없애고 토막내는 장면, 시장 좌판에 진열한 개다리 등을 펼쳐 보인다. 그리고 개고기 도축법을 만들려던 한국의국회의원 20여명을 악마(devil)라고까지 한다. 그런 공격에 걸맞은 방어와 현실적 대처가 필요하다.

편견을 바로잡는 일은 긴 안목으로 시간을 갖고 참을성 있게 펼쳐 나가야 한다. 한국에서 애완견을 팽(烹)하는 것이 아니고 식문화 역사와 전통이 다름을 알려야 한다. 몽둥이로 패서 잡는 참혹한 밀도살도 삼가야 하고, 외국인의 눈에 참으로 비위생적인 유통경로도 고쳐 가야 한다. 맞불 놓듯이 해서는 당장 편견을 뜯어고치기는 어려운 것도 인정해야 한다.

▼시간 갖고 편견 바로잡아야▼

우리는 월드컵을 성공시켜야 하고 그 과업은 몇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 한시적인 국가 비즈니스를 앞두고 자존심과 민족감정을 앞세우듯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 한복이 그지없이 아름답지만,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파는 사람이라면 한복을 입고 바이어를 만나는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 김치와 청국장 마늘은 참으로 기막힌 한국음식이지만, 그 냄새는 외국인에게 역겨울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안다.

주인과 손님이 문화의 차이를 모두 잘 이해하고 너그러워지면 이상적이다. 그러나 손님이 편견에 사로잡혀 달아날 지경이라면, 맞아들이고 장사해야 할 주인이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영리한 비즈니스다. 보신탕을 놓고 e메일과 홈페이지 등으로 진흙탕 개싸움 하듯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것은 스트레스 해소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분명히 현명한 것 같지는 않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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