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CJ ENTERTAINMENT 대표 이강복

  • 입력 2001년 12월 6일 18시 16분


《배우는 감독을, 감독은 제작을, 제작자는 배우나 감독을 해보고 싶은 게 영화 ‘판’의 생리다. 실제 배우나 감독이 제작자로 나선 경우도 있고, 제작자가 카메오로 스크린에 잠시 얼굴을 내밀거나 메가폰을 잡은 적이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경우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남의 떡이 커보이지만 막상 부닥쳐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CJ ENTERTAINMENT 이강복(李康馥·49)대표이사를 만나기로 작심한 것은 그가 대기업에서 20년 가량 ‘설탕장사’를 하다 99년 영화판에 명함을 내밀자 마자 흥행 돌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 후 2년 사이 30편의 한국 영화에 투자를 해놓고 있는 최대의 ‘전주(錢主)’인데다 6개 멀티플렉스 극장과 임대 상영관을 합쳐 85개 상영관을 갖고 있는 최대 ‘극장주(劇場主)’로 떠올랐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는 CJ ENTERTAINMENT의 코스닥 상장을 준비, 최근 영화사로는 처음으로 예비심사를 통과했다. 영화판에서 수십년을 보낸 ‘충무로 토박이 실력자’들도 이뤄내지 못한 ‘거사(擧事)’다. 인터뷰는 3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Character(성격)〓인터뷰에 앞서 그와 ‘거래’한 적이 있는 명필름 심재명대표와 이은감독, 신씨네대표 신철씨, 강제규감독 등에게 그를 평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결같이 “참 괜찮은 분이다. 솔직 겸손하고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텃세도 심한 한국 영화계에서 개성 강한 영화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래서 좀 트집을 잡아볼 생각으로 “셈이 흐리지 않느냐”고 넌지시 물었지만 하나같이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다. 기자는 맘 속으로 “이런 경우는 대개 재미없는 인터뷰가 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Job(일)〓군복무를 마치고 78년 11월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 제일제당에 입사했다. 곧바로 영업팀에 배치돼 선물거래 업무를 시작했고 81년부터 4년 간 뉴욕지점장으로 국제 감각을 익혔다. 귀국 후 식품수출 및 원료 조달 업무를 맡아 많을 때는 한해에 6000억원을 ‘주물렀다’.

잘나가던 그는 99년 7월초 제일제당 이재현(李在賢)부회장으로부터 느닷없이 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본부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삼성 SK 등 국내 굴지의 재벌 기업이 영상산업에서 손을 털고 나갔다. 밑빠진 독인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 당신이 판단해 이대로 엎어 버릴 것인지 아니면 계속해야 할것인지 판단해 달라”는 얘기였다. 일주일 가량 숙고한 끝에 자리를 옮겼다. 그해 8월 초의 일이었다. 당시 심경을 묻자 그는 “월급쟁이가 오너가 시키는데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겠습니까. 기회를 주었으니 한번 잘해보자는 생각 뿐이었지요”라고 말했다.

Entrance(입문)〓대표 취임 두달 만에 개봉한 명필름의 ‘해피엔드’가 대박을 터뜨렸다. 최민식과 전도연이 주연한 이 영화는 ‘영화는 잘 나왔는데 흥행은 어려울 것’이라는 일반의 우려와는 달리 전국적으로 116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그 역시 단박에 ‘떴다’. 또 심경을 물었다. “단지 운이 좋았다”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이강복 대표 흥행성적표(99.8 ~ 현재)
한국 영화 투자 배급외국 영화 수입 배급
영화전국 관객수(명)영화명전국 관객수(명)
해피엔드1,160,000헌팅550,000
행복한 장의사300,000러브레터25,000
츈향뎐280,000아메리칸뷰티670,000
60,000갤럭시퀘스트152,000
킬리만자로250,000글래디에이터2,790,000
공동경비구역JSA5,830,000엘도라도334,000
단적비연수1,550,000로드트립77,000
교도소월드컵116,000치킨런830,000
무사2,100,000미트페어런츠380,000
와이키키브라더스94,200캐스트어웨이1,560,000
멕시칸411,000
슈렉2,380,000
11,740,20010,189,000

NASDAQ(나스닥)〓궁극적으로 그는 미국 나스닥에 CJ ENTERTAINMENT 주식을 상장하고 싶어 한다. 그 전 단계로 일단 내년 1월 중 코스닥(KOSDAQ) 등록을 마칠 예정이다. 투기성 단기 자금인 ‘핫 머니’가 쏟아졌던 영화계에 자본의 안정화 및 투명화의 발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등록할 주식은 1237만주로 이중 30%인 371만주를 공모한다. 회사측은 액면가 1000원짜리 이 회사 주식이 1만 5000원∼2만원 정도에 거래될 것으로 기대한다.

Transparency(투명성)〓그가 CEO로서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경영의 투명성’이다. 그가 영화계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이전의 영화 스코어 라는 것은 ‘엿가락’이나 다름없었고 ‘통상 지방 관객은 서울의 1.5배 내지 2배’라는 주먹구구식 셈법이 통용됐었다. 하지만 ‘관리의 삼성’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흥행 스코어나 재무제표엔 한치의 오차가 없다. “영화 산업은 본질적으로 투기성이 강하기 때문에 경영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투자가들을 불러 모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Education(교육)〓인천 제물포 고등학교를 거쳐 75년 2월 서울대 사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피천득 장왕록 김윤식교수의 강의를 들었고 재학시절에는 연극도 했다. “대학 재학시절 ‘문학도’였고 당시만해도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내재된 ‘딴따라 기질’이 있었던 셈이다.

Record(기록)〓2000년 명필름의 ‘공동경비구역 JSA’로 583만여명의 흥행신기록을 수립했다. 2001년에는 강제규필름의 ‘단적비 연수’와 ‘무사’도 각각 155만명과 210만 관객이 들었다. 이밖에 그가 투자한 다른 영화를 합쳐 방화 10편으로 2년여 만에 무려 1174만명 가량의 흥행실적을 기록했다. 공동설립 파트너인 드림웍스의 흥행작인 ‘아메리칸뷰티’(67만명) ‘글래디에이터’(279만명) ‘치킨런’(83만명) ‘캐스트어웨이’(156만명) ‘슈렉’(238만명)등도 만만찮은 흥행실적을 거뒀다.

Target(목표)〓현재 일인당 연간 1.4회에 불과한 우리나라 영화관객 수를 2회 정도로 늘려야 영화산업이 안정적으로 굴러 갈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일본은 1.1회로 우리보다 적지만 인구가 많아 절대관객 수는 더 많고 유럽은 2.5회, 홍콩은 5회, 미국은 5.2회. 외화와 방화관객수가 6대 4 정도의 비율이 되기 위해서는 연간 60편 정도 방화를 제작해 9000만명 정도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계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혼 후 극장출입을 ‘끊어버리는’ 30∼50대 관객을 불러 모을 수 있는 ‘표사기 쉽고, 원하는 영화를 골라볼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의 멀티플렉스 극장을 늘려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학적 진단이다.

Aim(지향)〓안정된 배급망을 통해 한국 영화를 외국에 수출 및 배급할 수 있어야 모처럼 호황을 맞고 있는 한국 영화의 ‘진정한 미래’가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프랑스는 현실성이 없고 홍콩 싱가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은 시장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 그가 공을 들이면서 주목하고 있는 곳은 대만과 일본이다.

Investment(투자)〓명필름처럼 신뢰가 쌓인 제작사에서 만드는 작품은 ‘무조건’ 다 투자한다. 그는 “맘에 든다고 투자하고 그렇지 않다고 투자하지 않으면 제작사는 어떻게 안정적으로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거래 경험이 없는 제작사에 대해서는 감독이나 배우보다는 ‘스크립트(Script)’ 위주로 투자 여부를 선별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Never(천만에요!)〓짓궂은 친구들은 그를 볼 때마다 “근무시간에 마음대로 영화구경을 다니고 예쁜 여배우도 수시로 만날 수 있어 좋겠다”며 부러워 한다. 하지만 그는 “제가 그냥 ‘관객’이라거나 ‘책임자’가 아니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사업상’ 영화를 보러다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일의 연장’일 뿐”이라고 하소연한다.

2000년 CJ ENTERTAINMENT 매출
사업 구분금액비율
극장 배급314억76.40%
비디오 53억12.83%
TV, 캐릭터 등 7억 1.71%
기타 37억 9.06%
411억100.00%

Manner(매너)〓골프와 술자리 매너가 좋다고 한다. 20년 구력에 핸디는 10. 하지만 홀인원은 한번도 하지 못했다. 골프에서 못한 홀인원을 영화판에서는 여러차례나 한 셈이다. 라운딩을 할 때마다 그는 ‘어니스트 존(Honest Zone)’을 설정한다. 자기 핸디를 정확하게 말한 뒤 스코어가 사전에 말한 핸디에 가까운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영화 개봉일 등에 배우 스탭들과 술자리를 같이하면서 먼저 자리를 뜨거나 주사를 부린 일은 한번도 없다는 게 주윗사람들의 목격담이다.

Experience(경험)〓영화에 대해서는 ‘일반 관객’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 자부(?)한다. ‘닥터 지바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 ‘조이 럭 클럽’ ‘잉글리시 페이션트’ 등을 기억에 남는 영화로 꼽는다. 액션 보다는 멜로를 좋아하는 편. “영화판에 뛰어들기 전 본 한국 영화는 ‘서편제’와 ‘쉬리’ 정도에 불과했다”고 털어 놓는다.

Nest(둥지)〓형제가 많은 집(5남 3녀중 일곱째다)에서 자라난 탓에 ‘가족’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기자가 명함을 내밀자 “어디 이씨냐?”고 묻더니 “한산이씨 문중 아저씨 뻘”이라며 열다섯살 아래인 그를 깍듯이 ‘모셨다’. 부인 한안나씨(47)와의 사이에 고려대 1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창원과 고교 1학년 짜리 딸 희원을 두었다. 지난해 영화인들이 대거 방북했을 때 아들의 대학입시를 거드느라 다른 임원을 보냈고, 해외 출장 때마다 딸의 옷을 사들고 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세상에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사춘기 딸의 체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아버지가 과연 얼마나 될까?

Tomorrow(미래)〓솔직히 잘모르겠다. 하지만 세시간에 걸친 탐색 끝에 그가 위에서 ‘명령’을 내리면 어느 때고 보따리를 쌀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영화인’이라기 보다 ‘영화사업가’였고 ‘영화예술’보다는 ‘영화산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제로 섬(Zero Sum)’ 게임에 몰두해 있던 한국 영화인들에게 ‘포지티브 섬(Positive Sum)’ 게임을 가르쳤고, 영화는 감독과 배우가 잘 ‘만드는’ 것 못지 않게 흥행사가 극장에 잘 ‘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켰다.

<오명철 기자>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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