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건보공단, 이대로 놔둘 수 없다

  • 입력 2001년 12월 3일 18시 25분


건강보험공단이 직원들에게 불법으로 휴일근무수당을 지급하는 등 200억원 가까운 돈을 흥청망청 써버렸다는 보도는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 은행차입금으로 근근이 연명할 만큼 거대한 적자덩어리가 바로 건보공단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보험료가 오르는 통에 국민의 원성은 날로 높아 가는데 한푼이라도 아껴야 할 공단이 국민 돈을 제 주머니 돈처럼 썼다는 게 말이 되는가. 행정 착오로 1000억원 가까운 체납금을 받지 못하고 날려 버린 건보공단이다. 해야 할 일은 소홀히 하면서 잇속은 그토록 철저하게 챙겼으니 건보재정이 거덜났을 만도 하다.

건보공단은 직원 수가 1만명이 넘는 ‘공룡조직’이다. 올 3월 감사원 감사에 지적돼 줄인 게 이 정도다. 휴일근무수당 문제가 불거지자 공단은 ‘지난해 파업으로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휴일 근무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인원이 남아도는 판에 전체 직원의 80%가 두 달 동안 휴일을 하루도 쉬지 않았다는 얘기를 곧이 들을 사람은 없다.

건보공단이 이처럼 불신을 받게 된 원인은 졸속으로 이뤄진 통합에 있다. 작년 7월 직장의보와 지역의보를 법적으로 통합해 놓고도 업무는 여전히 분리되어 있는 데다 2개의 노조가 서로 발목잡기에만 골몰하는 ‘이상한 조직’이 건보공단이다. 여기에 웬만한 공기업이면 다 깔려있는 전자결제시스템도 없을 만큼 운영도 주먹구구식이어서 업무효율성을 기대하기란 애초에 무리다. 한 해 15조원이 넘는 자금을 다루는 조직으로서 털끝 만한 착오도 있어서는 안 되는데 이런 판국이니 툭하면 ‘사고’가 터지는 게 아닌가. 이 마당에 사회보험노조(옛 지역보험노조)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어제부터 전면파업을 벌인다는데 도대체 지금이 그럴 때인지 묻고 싶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건강보험의 파탄은 불 보듯 뻔하다. ‘화근’을 뿌리뽑지 않고 내년 예정대로 재정통합을 강행하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닥칠지도 모른다. 우선 적정인원을 산출해 과감하게 ‘군살’을 줄이고 조직을 새로 짜는 게 급하다. 관리운영비를 줄이는 것은 의료보험 통합의 명분이기도 하다. 직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고 현대적 경영시스템을 도입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런 일을 건보공단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사사건건 노조에 발목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건보공단이다. 정부가 나서서라도 하루빨리 건보조직을 정상화시켜 공단도 살리고 건강보험도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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