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설기현 눈부신 성장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33분


설기현
“유럽의 빅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플레이다.”

10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으로 열린 한국-크로아티아 평가전을 관전하던 영국의 저명한 축구칼럼니스트 랍 휴스는 ‘한국의 히바우두’ 설기현(22·벨기에 안데를레흐트)의 플레이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스트라이커로서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는 데다 전체적인 플레이를 읽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비록 벨기에 2부리그에서 1부로 옮기면서 그라운드에 나서는 기회는 적어졌지만 설기현은 확실히 달라진 게 있었다.

10일 경기에서의 플레이가 바로 그의 ‘변신’을 읽을 수 있는 대목.

설기현은 전반 45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상대 수비수 2명이 따라붙자 오른발로 볼을 후방으로 트래핑해 돌아서면서 왼발로 위협적인 슈팅을 날렸다. 비록 왼쪽 골포스트를 살짝 비껴 나갔지만 유럽 최고의 선수들도 하기 어려운 플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빅리그에서도 왼발과 오른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선수가 드물다는 것.

이것만이 아니었다. 설기현은 이날 상대 수비수를 몰고 다니며 한국 공격의 물꼬를 터줬다. 비록 악착같이 따라붙는 수비수들 때문에 볼 트래핑이 안정적이지 않았지만 항상 수비수 2, 3명을 달고 다녔다. 결국 이것은 한국 공격라인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후반 18분 최태욱의 선제골도 설기현의 이 같은 플레이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이천수가 왼쪽에서 센터링을 날리고 있을 때 설기현은 골지역에서 수비수 2명을 페널티지역 왼쪽 외곽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안정환이 볼을 받아 슬쩍 밀어줄 때 골지역 중앙은 빌 수밖에 없었고 최태욱이 안정환의 패스를 받아 손쉽게 슛을 날려 선제골을 뽑아낼 수 있었다.

거스 히딩크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유럽에서 설기현을 보며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를 지키고 있어 불안하다. 내가 불러다가 훈련을 시켜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지만 이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설기현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뛰어난 스피드를 앞세워 끊임없이 유럽의 높은 벽에 도전하고 있었던 것.

물론 설기현은 아직 볼 트래핑이 좋지 않아 공격 템포를 끊는 경우가 많고 벤치를 지키다보니 경기 감각도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 그러나 ‘큰물에서 놀면 다르다’는 점을 한국대표팀 합류 후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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