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황금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4분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아타왈파는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에게 속아 사로잡힌 뒤 자신을 풀어주면 갇혀 있던 방을 금으로 가득 채워 주겠다고 제의했다. 황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잉카 전역에서 모여든 황금과 은이 24t이나 됐다. 한국은행이 현재 국내외에 보유한 금을 합하면 14t가량이라고 하니 아타왈파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몸값을 치른 셈이다. 그러나 피사로는 황제가 풀려나면 군대를 재편해 공격해 올 것이라고 판단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처형했다.

▷인류가 황금을 발견한 이래 이 아름답고 부식되지 않는 금속을 차지하려는 욕망 투쟁 음모 배신이 그치지 않았다. 피사로가 대서양을 건너와 잉카제국을 점령한 동기도 바로 황금이었다. 황금에 대한 욕망은 세계 역사를 바꿔놓았다. 콜럼버스에 의한 신대륙의 발견도 황금을 얻으려는 욕망에서 시작된 항해의 산물이다. 황금을 직접 보관하고 교환하는 것은 위험하고 불편이 따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을 은행에 보관하고 대신 보관증을 받아 유통시키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이 금 보유량에 비례해 화폐를 발행하던 금본위제도의 기원이다.

▷미국은 70년대까지 금을 보유한 액수에 비례해 화폐를 발행하는 금본위제도를 썼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져 금 생산량이 실물경제의 확장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자 금본위제도를 폐기하고 관리통화제도로 바뀌었다. 금은 외환과 함께 국가간 중요한 대외 지불수단으로 쓰인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1000억달러에는 한국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도 포함돼 있다. 지금까지 채굴된 금의 60%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다.

▷금은 국제시장에서 주요한 투기 대상 금속이다. 비철금속을 거래하는 대표적인 시장 가운데 하나가 미국 뉴욕의 코멕스이다. 캐나다 노바스코샤 은행이 세계무역센터(WTC) 지하창고에 보관했던 12t의 금괴가 무사히 회수되었다고 한다. 코멕스 선물거래를 보증하기 위해 보관했던 금이다. 초고층건물이 일시에 주저앉는 충격과 이글거리는 화염 그리고 고온 속에서도 금은 온전했다. 이 같은 불변성 영원성 때문에 세상이 불안할수록 금값이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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