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러시아에 속고, 日에 당하고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8시 57분


엊그제 일본과 러시아가 내년부터 남쿠릴열도 수역에서 한국 등 제3국의 꽁치 조업을 인정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막바지 실무협상만 남겨둔 ‘사실상 타결’ 상태라는 것이다. 대체어장 확보도 어렵다고 하니 그동안 “일-러간 협상에서 한국의 조업이익이 배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부 말을 듣고 있던 우리 어민들만 덤터기를 쓰게 됐다. 정부가 이번 주말 러시아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지만 뒷북치기 외교에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러시아와 일본이 남쿠릴열도 주변 수역에서 제3국 조업금지에 합의할 것이라는 얘기가 본격적으로 흘러나온 게 지난 주말이었다. 하지만 이 사안은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친서를 보냈을 때부터 이미 ‘외교 현안’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담당 부처들은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수수방관하고 있었다는 의혹이 짙다.

일차적인 책임은 해양수산부에 있다. 해양수산부는 얼마 전까지도 “러-일 두 나라가 한국 어선의 남쿠릴열도 수역 조업금지에 합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협상 흐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드러냈다. 이토록 무능력한 해양수산부가 과연 우리 어민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외교통상부도 마찬가지다. 외교통상부 쪽에선 그동안 일본의 대(對)러시아 교섭 동향을 수시로 파악해 대처해 왔으며 진행중인 외교 사안에 대해 언론에 설명할 수 없었다고 변명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국민이 듣기 좋은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이번 사태는 남쿠릴열도(북방 4도)를 둘러싼 일-러간의 영유권 분쟁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일본이 이 지역에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한국을 제쳐놓고 러시아와 담판한 것은 교과서 왜곡 문제, 총리의 신사 참배 등으로 가뜩이나 한일관계가 악화돼 있는 마당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그동안 10여 차례나 “한국의 어업이익이 손상되지 않도록 유념하겠다”는 입장을 우리측에 전달한 러시아도 ‘이중 플레이’를 해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번 사태는 우리 외교의 단편적이고 낮은 안목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우리 어업이익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차제에 관련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고려하는 것은 물론 철저한 내부 점검과 반성도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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