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어른 존경심 꼴찌

  • 입력 2001년 10월 11일 18시 24분


농경시대에는 사회발전의 속도가 느려 세상을 오래 산 노인의 경험은 삶의 자상한 안내자였다. 먼저 태어나 오래 산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면 그만큼 시행착오의 코스트를 줄일 수 있었다. 젊은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메주를 띄우고 장맛을 내는 법을 익혔다. 젊은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다니며 파종을 하고 모를 심고 볏가리를 치는 요령을 배웠다. 농경시대에는 삼강오륜의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삶의 지혜였고 세상 질서였다.

▷산업시대를 넘어 정보시대를 살면서 청소년들은 집안 어른으로부터 배울 것이 별로 없다. 컴퓨터는 나이가 많을수록 운용 능력이 떨어진다. 영어 발음도 아이들을 못 따라간다. 승용차 뒤에 청소년 자녀들을 태우고 장거리 여행을 해볼라치면 자녀들이 나누는 컴퓨터 게임 이야기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우리 세대의 것과는 너무 다르다. 슬픈 일이다. 지금의 장년 세대는 장 담그고 길쌈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고 랩송과 디아블로 게임도 모른다.

▷동아시아 태평양 지역 17개 국가 중 어른들에 대한 한국 청소년의 존경심이 꼴찌로 나타났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이 3억명의 어린이를 대표할 수 있는 표본을 선정해 1 대 1 면접조사를 했다니 신뢰도가 높다. 한국 청소년들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아버지(21%) 어머니(13%) 연예인(12%) 교사(5%) 순으로 응답했으나 아버지들이 으스댈 필요는 없다. 자녀들과 얼굴을 마주 대할 시간이 적으니 잔소리를 안하고 용돈을 너그럽게 주어 어머니보다 조금 인기가 높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자녀들도 성장하면 인식 능력이 함께 자라 부모들의 잘못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뿐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무조건 찍어누른다고 어른을 공경하는 예절바른 소년으로 자라는 것도 아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일찍이 “새 살림 새 건설에 헌 도덕 헌 사람이 참고는 되겠지만 그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뒤집어씌우려는 것은 크나큰 잘못”이라고 썼다. 청소년들에게 어른 공경을 가르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가정과 사회의 청소년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한지 살펴볼 일이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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