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경수/갈림길에 선 美 중동정책

  • 입력 2001년 9월 12일 18시 32분


미국이 세계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으로 남북전쟁이래 가장 큰 국가적 재난을 겪고 있다. 미국의 최대 도시인 뉴욕과 수도인 워싱턴을 비롯한 도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테러행위는 가히 국가적 위기라고 일컬을 만하다.

▼테러 예견실패 논란 클 듯▼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사태 수습과 더불어 향후 상당기간 대중동정책 등 관련 대내외 정책 방향을 둘러싸고 다음과 같은 논란 내지는 분석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번 참사가 최근 극한 상황으로 치닫던 중동사태에 비춰 어느 정도 예견이 가능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즉 여러 가지 정황 증거로 볼 때 미국에 대한 대규모 테러는 중동분쟁의 악화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언론들이 이슬람 과격파의 소행이라고 보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재연 조짐을 보여온 중동분쟁은 2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강경파 아리엘 샤론이 압승, 총리에 취임하면서 악화되기 시작했다. 샤론 총리는 ‘중동 정치의 유일한 수단은 외교가 아닌 군사력’이란 신념대로 힘의 정책을 사용해 왔다. 한편 팔레스타인에서는 자치정부 수반 아라파트가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실패함에 따라 발언권이 약해지고 정부 내 강경파인 민주해방전선과 인민해방전선 등이 득세함으로써 양측 모두 강경파가 주도권을 차지하면서 극한적 대치 국면으로 치닫게 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11개월 동안 양측은 5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으며 지난달 말에는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지도자 무스타파가 이스라엘군의 미제 아파치 헬기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하는 등 사태가 악화됐다.

이에 맞서 이슬람 과격파는 대 이스라엘 테러는 물론 이스라엘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간주하는 미국에 대한 각종 폭탄테러를 자행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는 1998년 8월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폭파사건으로 200여명이 숨지고 5000여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보았다. 미국 연방법원은 5월 대사관 폭탄테러 용의자에 대한 재판에서 반미 테러의 배후 인물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했다. 이에 대해 라덴측은 6월25일 향후 몇주 내에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것이다. 이밖에 미국이 이슬람 과격파의 분노를 산 가장 최근의 사건은 지난 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에서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규탄하는 결의안 채택과 관련,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 대표단을 철수시킨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향후 대중동정책에 있어서 미국의 최대 딜레마는 강경 일변도의 이스라엘 샤론 정부와 더불어 친이스라엘적 강성 중동정책을 유지할 것이냐, 아니면 보다 중립적인 화해 협력 정책을 쓸 것이냐 하는 갈림길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미국 내외를 통틀어 최대의 국방 안보 현안인 미사일방어(MD)계획과 관련, 야당인 민주당의 반대 논리에 무게가 실릴 수 있게 됨으로써 MD 예산 삭감 등 논란이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민주당이나 일부 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행 가능성이 없는 위험에 대비해 수천억달러를 쏟아 붓는 것보다 미국이 현실적으로 당면한 위협인 적의 재래식 운반수단에 의한 생화학 무기나 폭발물에 의한 위험이 더 크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2002년도 MD 예산에서 미 상원 군사위가 13억달러를 삭감했으나 추가 삭감이나 적어도 증액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MD 반대논리에 무게▼

셋째, ‘에셜론’ 등 세계에서 최강을 자랑하는 미국의 첩보 정보 수집 역량에 대한 반성과 함께 보안 정보기관간 책임 논쟁이 의회에서 제기될 수 있다. 얼마 전에도 미 연방수사국(FBI)의 이중 스파이 요원 문제 등으로 책임자가 바뀌었으나 본격적으로 조직 인사 개편 문제가 거론될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지하드(성전)’라는 말에 걸맞게 종교적 신념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테러행위 모의는 현대의 과학적 탐지 기법으로도 적발이 용이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끝으로 향후 군의 기본 임무가 주요 전쟁에 대비한 역할에서 이번 테러 참사에서 보는 것처럼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OOTW)에 상대적으로 높은 비중이 실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으나 최근 점증하는 테러, 마약거래, 국제조직범죄 등 이른바 ‘비재래적 안보 현안’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는 차원에서 군의 임무와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김경수(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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