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벼랑끝 '하이닉스' 회생이냐 정리냐

  • 입력 2001년 9월 9일 19시 13분


하이닉스반도체의 생사를 결정할 전체 채권단회의가 이번주 중 열린다. 하이닉스는 2차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우리 경제의 최대 변수로 등장했다. 경제계에서는 하이닉스를 살릴 것인지,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각각의 경우에 대한 파급효과 및 향후 생존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본다.

▼신규로 자금 지원하면▼

투자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없어야 한다는 점. 6월 하나은행은 현대건설에 대출해준 520억원을 208억원만 받고 다른 은행에 넘겼다. 대출금의 절반도 회수를 못한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하나은행 주식을 사들여 약 3개월만에 지분이 36%에서 46%로 높아졌다. 현대건설 관련 불확실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채권단의 자금 지원을 통해 하이닉스를 살려나가면 당장 고통은 회피할 수 있지만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

전문가들은 “채권단 지원을 통한 일시적 회생은 시한폭탄을 계속 안고 가는 것에 불과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며 “시장에 결코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향후 반도체 경기와 하이닉스의 영업 전망을 고려해볼 때 확실하게 살리기 위해서는 수조원의 신규 자금과 부채 탕감이 더 필요한데 신규 자금 5000억원 등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분석. 이처럼 하이닉스를 계속 끌고 간다는 것은 결국 문제 해결을 차기 정권으로 떠넘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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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관계자는 “지난주 하이닉스 박종섭 사장이 자금 지원을 호소하러 왔다”며 “반도체 가격 예측, 기존 주주 유상증자, 자산 매각 등 어느 것 하나라도 틀어지면 솔직히 회생을 자신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법정관리 신청시▼

하이닉스는 이미 자체 정상화가 불가능한 실정이어서 11조64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결국 채권단과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우리나라의 경기 회복이 상당기간 지연된다는 점. 하이닉스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4%(약 60억달러)를 차지하고 있고 고용 인원은 2만4000명, 1차 협력업체가 2500개(약 15만명)나 된다. 따라서 하이닉스의 법정관리는 수출 감소와 고용 불안, 정보기술(IT)부문 수출 경쟁력 약화 등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다.

먼저 금융기관은 △은행 1조9000억원 △투신과 리스사 각각 6000억원 등 3조1000억원의 추가 손실이 발생한다. 특히 여신액이 많은 한빛 외환 조흥은행에는 추가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정부는 이미 “추가 공적자금 조성은 없다”고 밝힌 바 있어 더욱더 입장이 곤란해진다. 또 정부산하기관인 수출보험공사와 신용보증기금은 하이닉스의 채권보증에 따른 대지급 의무가 각각 7800억원, 6100억원이나 발생한다.

현대중공업 등 현대 관계사의 동반 부실화도 우려되는 대목. 채권단의 2조9000억원 출자전환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현대건설은 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고 우량 기업인 현대중공업도 약 2조원의 손실을 보게 돼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하이닉스의 여신 규모가 워낙 커 파급효과가 대우 사태에 못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현 정권은 성공작으로 평가해온 ‘빅딜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만 한다.

▼미국의 속마음은…▼

최근 하이닉스를 둘러싼 미국의 압력은 매우 강도가 높다. 미국은 한빛 조흥 외환 등 하이닉스 지원에 적극적인 은행의 최대주주가 한국정부라는 점을 들어 ‘채권단지원〓한국정부 지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얼마 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정부소유 은행 지분을 조속히 매각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문제와 무관치 않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하이닉스와 관련, 김 대통령과 청와대를 직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도체 D램시장에서 하이닉스와 직접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스는 미국 공화당정부의 영향력 있는 정치후원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는 마이크론의 로비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 마이크론은 이번 기회에 하이닉스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면 D램 시장에서 확고한 2위 자리를 굳힐 수 있고 공급감소에 따른 반도체가격 상승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한국은 미국 시티그룹의 자회사로 하이닉스의 재정주간사인 SSB를 활용하고 있다. 현재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이 시티그룹 회장을 맡으며 미국 정부를 설득하고 있다.

시티그룹이 이렇게 적극적인 것은 시티뱅크가 하이닉스에 이미 1100억원 가량 물려 있기 때문. 외국계 투자은행 관계자는 “SSB는 하이닉스의 해외주식예탁증서(GDR) 12억5000만달러 발행을 주선한 이후 신뢰도가 땅에 떨어졌다”며 “상황이 더 악화되면 SSB는 국제시장에서 명함을 내밀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

▼현금 흐름 어떻게…▼

하이닉스반도체는 살로먼스미스바니(SSB)가 제시한 경영정상화 방안대로 채권단이 지원하더라도 연말이면 다시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채권단이 지원하더라도 기존 투자자의 유상증자 5000억원이 실패하면 연말 여유자금이 5690억원이 아니라 690억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3일 블룸버그통신은 “하이닉스는 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4억달러(약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으나 102명의 아시아펀드매니저에게 매입 의사를 자체 조사한 결과 94명이 거부했다”며 성사 가능성을 매우 낮게 예측했다. 최근 하이닉스 주가는 6월 해외DR발행 당시보다 74%나 떨어져 해외 투자자들은 SSB를 원망하고 있다.

또 자산 매각도 계획대로 차질없이 진행돼야 한다. 내년말까지 5950억원에 팔기로 했던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사업부문을 대만의 캔두컨소시엄에 6억5000만달러(약 8450억원)에 넘기기로 한 것은일단 희소식. 다만 내년말까지는 이중 4억달러(약 5200억원)만 현금으로 받을 수 있게 돼 내년말까지 현금은 오히려 750억원이 부족하게 되는 셈. 현대오토넷 등 분사기업의 사업부문 매각도 연말까지 성사시킬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SSB가 가정한 반도체 가격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SSB는 연말부터 반도체 경기가 서서히 살아날 것으로 보고 내년과 2003년의 반도체 평균 단가(64MD램 환산기준)를 현재 가격인 1.2달러선보다도 높은 1.5달러로 정했다. 교보증권 김영준 책임연구원은 “전문가들은 반도체 경기가 내년 1, 2분기부터 회복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최소한 현 수준을 기준으로 삼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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