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창순의 대인관계 클리닉]유리그릇 같은 아내

  • 입력 2001년 9월 6일 18시 23분


30대 초반의 김모씨. 자그만 가게를 꾸려가는 그는 요즘 사는 게 심란하다. 아내 때문이다. 결혼 생활 3년 차에 아직 아이가 없어 큰 돈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장사가 조금 안되는 것 정도는 참아낼 만하다. 그러나 아내의 ‘연약함을 가장한 히스테리’는 견디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제 아내는 연애할 때부터 작은 일에도 부서지기 쉬운 유리그릇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런 연약함을 사랑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보호자가 돼 줄 수 있다는 게 기뻤으니까요.”

그의 말이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유리그릇 같은 아내의 연약함과 섬세함이 다 사랑스럽지만은 않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결혼생활이란 게 가끔 투닥거리기도 하고 큰 소리도 내며 살아가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제 아내한텐 도무지 그런 게 안통합니다. 어찌나 신경이 예민한 지 제가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거나 아예 앓아누워 버립니다. 그러면 결국 제쪽에서 ‘잘못했다, 미안하다, 한 번 봐주라’하며 사정을 하게 되는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는 언제부턴가 아내한테 무슨 일이든 양보하며 지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내가 연약함을 내세워 절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겁니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자 아내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히스테리로 보이고, 그동안 갖고 있던 연민의 감정도 다 사라지고 없는 형편입니다.”

이 커플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아직도 자기 행동이 남편한테 통한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연약함이나 자기연민을 내세워 상대방을 조종하고자 하는 행위(수동적 의미의 조종)는 결혼생활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의 하나다.

지배력을 앞세우면(적극적 의미의 조종) 상대방은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안다. 그러나 수동적 조종은 좀 더 교묘해서 상대방은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감정적으로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지기 쉽다.

만약 아내나 남편이 수동적 조종가 타입일 경우, 대처방법은 좀 더 단호해지는 길밖에 없다. 가련한 모습으로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사람을 냉정하게 대하기란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 연약함에 조종당하며 분노 속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다면 단호하고 냉정하게 조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인생에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몫은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부부사이라 하더라도 그 몫까지 내가 다 짊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양창순(신경정신과 전문의) www.mind-op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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