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정지용의 죽음

  • 입력 2001년 8월 28일 18시 22분


“옥에 티나 미인의 이마에 사마귀 하나야 버리기 아까운 점도 있겠으나 서정시에 말 한 개 밉게 놓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시인 정지용(鄭芝溶)이 생전에 문인들에게 했던 말이다. 그의 시에는 확실히 말 한 개 밉게 놓인 것이 없다. 어쩌면 그렇게 상황에 맞는 표현인지 섬세하고 감각적인 시어(詩語)의 구사가 경이롭기만 하다.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향수) ‘보고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감을 밖에’(호수)….

▷정지용의 삶은 그러나 시어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6·25전쟁의 혼란기에 ‘월북’꼬리표를 달고 잠적했고 그 후 40년이 지나서야 ‘납북’으로 인정돼 ‘금서(禁書)’라는 딱지가 풀렸다. 그의 아들딸은 지금도 남과 북으로 갈라 사는 아픔을 겪고 있다. 2월 제3차 남북이산가족 단체상봉을 통해 서울에서 만난 남쪽의 아들 구관(求寬·73)씨와 딸 구원(求苑·66)씨, 북의 아들 구인(求寅·68)씨는 부둥켜안고 눈물만 삼켰다.

▷정지용의 죽음에 대한 새로운 목격담이 전해져 관심을 끌고 있다. 전쟁 당시 북한에서 후퇴하던 중 비행기 기관총소사(掃射)에 맞아 즉사했고 동행하던 북한 수필가가 그를 땅에 묻었다는 것이다. ‘8·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고 돌아온 도종환(都鍾煥) 시인이 북측인사에게서 들은 얘기다. 정지용의 남쪽 가족들은 지금까지 그가 평양교도소 수감 중 유엔군의 폭격으로 숨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북측가족은 북으로 가던 그가 동두천 소요산 기슭에서 미군비행기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군이 일본 오키나와에서 총살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최근 북한이 펴낸 ‘조선대백과사전’에도 그가 50년 9월25일 사망했다고 기재돼 있을 뿐 더 이상의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내년이면 태어난 지 100주년을 맞는 민족의 대시인이 어떻게 어디서 죽었는지 아직도 정확하게 모른다는 것은 후손들의 예의가 아닌 것만 같다. 구천을 떠돌고 있을 그의 혼은 지금도 그의 시 ‘향수’를 읊조리며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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