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아직 걱정많은 여자축구

  • 입력 2001년 8월 8일 18시 28분


퀴즈 하나.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의 주량은 얼마나 될까.

지난해 모 실업팀 20여명이 모인 회식 자리. 맥주가 몇 순배 돌고 난 후 본격적인 소주 타임이 시작됐다. 2시간여의 회식이 끝날 즈음 구석에 쌓인 빈 소주병은 모두 5박스. 이쯤 되면 어지간한 남자 주당도 혀를 내두를 만하다.

여자 축구선수들의 술 실력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년 전만 해도 한국의 여자축구 실업팀은 단 2팀. 그나마 제대로 골격을 갖춘 팀은 INI스틸(구 인천제철) 하나뿐이었다. 자연히 매년 대학을 졸업하는 40여명의 선수 중 실업팀에 입단할 수 있는 선수는 고작 2, 3명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보니 술로 세월을 보냈고 훈련을 게을리 하다 보니 실업팀과의 실력차도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여자축구가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99년 12월 숭민원더스가 창단돼 실업 라이벌전이 가능하게 되면서부터다. 대학을 졸업한 후 주유소, 카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 돈벌이에 전전하던 선수들을 불러모았던 하성준 숭민 감독은 당시 선수들의 몸을 만드는 데만 1년을 투자해야 했다. 결실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INI스틸 10명, 숭민 9명, 한양여대 1명 등 단 3개팀 선수들로 구성된 ‘기형’ 대표팀이 7일 끝난 타이거풀스토토컵 국제여자대회에서 중국과 브라질을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중국과 브라질이 대표 2진급이라지만 불과 몇 년 전 이들 나라의 청소년대표팀에조차 완패를 당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가히 비약적인 발전이다.

그러나 여자축구계 사람들의 표정엔 근심이 앞선다. 그것은 국민의 기대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대회 성적에 도취돼 2개 실업팀으로 근근이 꾸려나가는 국내 여자축구의 열악한 현실이 스포트라이트 뒤로 가려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여자축구연맹의 한 관계자가 “칭찬도 격려도 좋지만 이번 대회를 후원한 타이거풀스처럼 실질적인 도움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실업팀 창단이 급선무”라고 호소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여자축구팀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한해 약 10억원 가량. 여자축구 인기가 올라갈수록 홍보 효과가 더 커진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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